[서초동] 브로첸1552-의미없는 독일풍
예전엔 어딜 가더라도 한두 번 먹을 분량 이상을 사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또한 욕심을 내는 원동력도 대개 긍정적이었다. 맛있어 보이니까.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잔뜩 사곤 했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맛있는 곳-만약 존재한다면-에선 지나치게 욕심 부리지 않는다. 또 오면 되니까. 하지만 발을 들이는 순간 ‘견적’이 나오는 곳이라면? 희망은 버리고 지갑은 비운다. 조금이라도 먹어봐야 할 것 같다면 집어 든다. 어차피 다시 오지 않을테니 시간과 노력을 줄이는 편이 현명하다고 본다.
브로첸1552라는 빵집이 그런 곳이었다. 물론 돌아다니는 정보에 큰 믿음을 주지도 않았지만, 폭염을 뚫고 발을 들여놓은 순간 머리 속의 ‘게임 오버’ 등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뭐랄까, 김영모제과점의 백화점식 구성을 20%쯤 낮은 질로 구현하는 가운데 체면치레로 ‘독일풍’을 살짝 끼얹거나 덧바른 빵들이었다. 완성도가 너무 낮아서, 브로첸 같은 빵을 놓고 독일풍이니 아니니 따지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마구 집었다. 독일풍 같은 것도 아닌 것도, 애플 스트루델부터 케이크까지도 다양하게 집어 들었다. 취재 가기 전에 동선이 맞아 들렀는데 시간이 남아서(바로 어제 올린 오프레에 가던 길이었다), 심지어 커피까지 사먹었다. 영수증이 어딘가 굴러다닐텐데 귀찮아서 참고 안 하고 말하자면 4만원에 가까운 3만원 대로 썼을 것이다. 직무 수행비로 보자면 큰 돈일리는 없다.
하지만 그 돈으로 바꿔 올 수 있는 빵의 처치는 맛과 반비례해 너무 곤란했다. 다시 한 번, 맛을 따지기 이전에 이곳의 빵 또한 아주 잘 익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결국 글을 쓰게 만든 신라호텔이나 여타 일본풍 단과자 수준은 아니지만, 뿌리가 비슷하거나 지방을 적극적으로 쓴 빵들은 익은 정도는 물론 질감도 축축하고 나빴다. 버터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이전에 지방 함유량이 너무 낮아 기존의 삼단 분류(부자-보통-가난한 이의 브리오슈)에도 속할 수 없는 와중에 질척하거나 푸석했다. 비단 지방 뿐만 아니라, 조직에 공기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 단맛도 별로 없이 요령이 모양을 잡아준 케이크나, 역시 뻣뻣한 반죽에 아무 맛도 안 나는 사과가 든 스트루델도 돈이 아까웠다. 나머지 “독일풍” 빵은… 언급을 생략하겠다.
대체 이런 빵집은 뭐하는 존재일까. 내가 먹어본 것 가운데는 맛 이전에 발효하고 구운 게 없어 희망이 없다고 보지만, 혹 동네나 번화가, 접근이 쉬운 곳에 있다면 속는 셈 치고 시행착오를 겪어 먹을 만한 것을 골라낼 가능성도 난 없다고 보지만 누군가에게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입지도 아니다. 서초역에서 멀지는 않지만 부러 찾아가야 하는 골목 안쪽에 있다. 또한 표방이야 원하고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지만 빵이 굳이 찾아갈 만큼 확고하게 독일을 머금고 있지도 않다. 누구나 찾아갈 자유와 권리를 누리겠지만 주변에서 그러겠다면 적극 말리고 싶은 수준이다.
그런데 ‘첨가물을 쓰지 않는 건강빵’까지 표방한다. 늘 말하지만 모두의 믿음이나 소망과 달리, 제빵의 출발 지점에서 쓰는 천연 발효종 같은 게 압도할 만큼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무엇을 써서 시작하더라도 발효 잘 시키고 잘 구워야 일단 맛을 떠나 먹을 수 있는 빵이 나온다. 먹기도 어려운 빵을 만들어 팔고, 이를 정통이니 뭐니 찬사 붙여 권한다. 폭스바겐이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생각할 수 있는 독일의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할 텐데, 이곳에서 파는 빵에는 그런 게 단 1도 안 깃들어 있다. 누군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맛있는 빵을 찾아 폭염을 뚫고 이런 곳을 일부러 찾는다면 난 그를 위해 아주 깊이 슬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