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탕이 9,900원?

IMG_0428속고 싶다. 재주만 좋다면 얼마든지 속을 수 있다. 세련된 거짓말이 차라리 서투른 솔직함보다 낫다. 적어도 그럴 능력은 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특히 한식이면 더 좋다.  이 9,900원짜리 갈비탕이 느슨하게 그런 영역에 속했다. 지단이나 실고추 같은 고명을 보라. 전통을 고집하는 유서 깊은 한식집도 아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동네 고깃집의 점심 메뉴일 뿐이다. 물론 넘쳐듯 쌓인 갈비는 정확하게 속임수다. 들추면 거의 내 주먹만한 무 두 덩어리가 떡허니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도 썩 나쁘지는 않다. 고기랑 같이 끓인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고, 푹 물렀다. 덩어리째 먹는 기분이 괜찮다.

굽은 뼈가 출신을 말해주는 갈비는 굉장히 적절하게 익었다. 어떤 적절함인가. 뼈에서 훌렁 떨어지지 않아 만든 사람이 모양새를 고민하지는 않지만, 먹는 사람이 이를 세워 힘줘 뜯을 필요는 없을 정도로 푹 익은 상태다. 이런 갈비를 탕으로 내는 곳이 많지 않다. 대부분 뼈에서 떨어지는 걸 고민해 덜 익히고, 덕분에 뜯어 먹다 보면 잇사이에 고깃결이 낀다. 갈비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래옥 들어 가는 길의 문화옥 같은데서 먹을 수 있는 우족탕도 푹 무르지 않아 연골을 우적우적 씹는 질감이 기분 나쁘다.

‘갈비탕이 9,900원이면 싼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건 맞다. 음식으로서 적절한 완성도를 갖추기는 했지만 그래도 끼니로서 좋은 선택은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국물에 있다. 갈비가 말해주듯 분명히 짝 또는 이분도체 등으로 들여다가 곧은 뼈에 붙은 가운뎃살은 발라내 구잇감으로 팔고 남은 걸 끓일 텐데 그 밖의 자투리를 활용한 흔적이 배어있지 않다. 굳이 건더기만 국물의 재료로 삼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또한 양도 너무 많다. 건더기로 배를 불리도록 설정한 국물 음식은 존재하기가 어렵다. 그 지점에 이르면 국이라는 조리 형식을 스스로 위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은 밥일텐데, 국물이 넘쳐날 정도로 많으면 밥을 떠 먹기가 불편하다. 만족감을 줄 정도로 숟가락에 퍼 담는 일 자체가 노동으로 전락하기 때문.

이러한 비효율성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한식에 대한 모든 불만족은 결국 그 지점으로 수렴한다. 싸지 않지만, 고기를 좀 먹었다는 것 외에 이 음식이 총체적으로 주는 만족감은 굉장히 부실하다. 조리를 잘 해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그야말로 구조적인 문제다. 체면치레나 수동적 공격성이 음식의 형식을 빌어 발현한 것이라 믿는다. 수북하지만 알차지는 않다. 한 상 가득히 벌여 놓지만 맛이 비슷하고 영양소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포만감을 주지도 않는다. 애초에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설정이 아니다. 온갖 크고 작은 그릇과 접시와 종지와 수저에 소주잔까지 가세하면 손님이 먹고 나간 식탁은 전쟁터가 생각나도록 난장판이다. 식사에 얽힌 모든 여건이 복잡하고 부산스러운데, 정작 식사 자체는 그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개별 음식점의 재주에는 속아도 괜찮지만, 이 거대한 “전통”의 멍에에는 속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