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괴의 카레
저녁때가 가까워 오면서 카레 생각이 났다. ‘커리’ 말고 ‘카레’말이다. 전자를 만들 기본 재료, 즉 향신료는 언제나 집에 있다. 조합해서 볶아 갈아도 되고, 향신료만 따로 가지고도 있다. 따라서 가장 가까운 정육점에서 고기만 사오면 금방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후자를 만들 재료는 오히려 가지고 있지 않다. 고형카레 말이다. 그래서 좀 멀리까지 나갔다 왔다. 그것도 빈속으로. 요즘 나는 빈속으로 살아 있는 경우가 잦다. 지난 주엔 여러 가지 이유로 하루 두 끼까지 먹은 날이 드물었다. 나는 아마도 그 원인을 비교적 자세하게 헤아리고 있지만 끄집어 내지는 않는다. 지나가는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이라고 믿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자괴감이 괴롭힐때 노동이 도움된다는 건 의외로 늦게 배운다. 나에게는 역시 음식을 만드는 것이 그런 노동의 핵심이다. 카레를 끓이고 브로콜리를 정식으로 데쳤다…라고 해봐야 큰 솥에 물을 열심히 끓이는 것 뿐이지만. 이런 마음으로 만드는 음식은 대개 그다지 맛있지 않다. 요즘 내가 한 음식은 평소보다도 더 맛있지 않다. 그래도 만들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맛이 없지만 그래도 먹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오늘 끓인 카레에서는 자괴의 냄새가 풍겼다. 새삼스러울 것이 있는가? 없다.
정말이지 맛없게 생겼네요. 뭉쳐있는 밥도 그렇고, 채소 다듬은 모양새도 그렇고. 자괴감 느껴야 마땅할 듯.
감사합니다. 다음엔 더 맛없게 만들겠습니다.
^^; 제 눈엔 맛있게 보이는데요~;;; ㅎㅎ 커리/카레 다 좋아해서 그럴까요?? 공복이 오래되면 기운 없구 힘들어요~ 잘 챙겨드시면 좋겠어요>.<
저한테 원한이 없으셔서 그럴 거에요… 잘 챙겨 먹겠습니다!
맛은 바르게 된 것 같은데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