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어 치즈 케이크: 무능함의 상징
레어 치즈 케이크는 의미 있는 디저트인가. 10~11월 디저트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가운데, 어느 카페에서 오랜만에 먹었다. 까페의 핵심 메뉴라던데 그에 걸맞게 완성도는 좋았다. 깔끔하게 잘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디저트 전체의 좌표도 헤아려야 한다. 과연 레어 치즈 케이크는 어느 지점에 놓아야 하는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오븐에 굽는 치즈 케이크가 존재하기 때문. 과연 레어 치즈 케이크와 뉴욕 치즈 케이크를 전혀 다른 음식이라고 구분해야 하는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의미도 따로 부여할 수 있을까? 달리 말해, 맛있는 레어 치즈 케이크가 맛있는 뉴욕 치즈 케이크와 동등하거나 나은 디저트로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에 익히는 과정에서 훨씬 더 복잡한 맛이 발달하기 때문. 여러 미사 여구가 따라 붙지만 궁극적으로 레어 치즈 케이크는 재료의 조합이다. 그 이후 열을 가해 ‘+a’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 없다.
이런 식의 디저트가 왜 흥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집에서라면야 간편함을 내세워 ‘노 베이킹’ 디저트가 인기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재료를 섞어 다른 개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요리 초보라면 꽤 큰 성취감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을 받고 파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형태는 갖출 수 있을지 몰라도 맛에 대한 비전이나 기술을 기대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파는 것 자체도 웃기지만, 주력 메뉴 대접을 받는 현실은 한심하다. 일반 식사의 영역에서 음식점이 ‘집밥’이나 ‘가정식’을 표방하고 그것이 장점으로 인정까지 받는 상황과 흡사하다. 디저트는 인위적인 조작이 기본인 음식인데, 그 하한선과 프로의 영역이 맞물리는 지점에 대한 기준이 없다. 요즘 갑자기 (또한 쓸데없이) 유행하는 티라미수나 청포도 타르트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바닥이 너무 뻔히 보인다. 능력이 되는데 이런 디저트를 만드나? 아니다, 없으니까 이 정도로도 장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물론 굳이 불을 거치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디저트도 많다. 그러한 것들도 조리의 어느 지점에서 맛이나 질감을 디저트의 인위적인 성격에 맞추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또한 불의 손길도 거의 반드시 개입한다. 파나 코타를 예로 들어 보자. 기본은 우유와 크림, 설탕과 젤라틴 정도니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전부를 섞기 위해 끓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경우 과일을 끓여 만든 소스를 더한다. 생과일을 더하는 것과 끓인 콤포트/소스를 끼얹는 차이를 인식/인정할 수 있는가? 그 차이를 모른다면 디저트와 조리, 맛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저트 가게가 늘지만, 의미가 있는 곳은 거의 없다. 현존하는 가장 쉬운 문법을 답습하는데서 그친다. 그곳 아니라 어디에서도, 심지어 프랜차이즈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문법과 맛이다. 티라미수’만’ 만들 줄 아는 것과 티라미수’도’ 만들 줄 아는 것은 다르다.
기술을 닦았거나 보여주고 싶은 맛의 비전이 있다면, 레어 치즈 케이크 같은 걸 선택할 이유가 없다. 내재적인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레어 치즈 케이크는 무능함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