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재회
늦게 일어나 청소와 설거지를 마치고 이태원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뒤져 음악을 고르다가, 오랜만에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1악장을 들었다. 아직 발을 들여놓을 필요를 못 느끼는 세계의 음악이라, 이렇게 겨울에만 듣는다. 물론 아무 것도 모른다. 하지만 듣고 있노라면 기실 한 번도 제대로 보지는 않는 영화가 생각난다. 눈발이 날리는 사이로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쓴 사람들이 엇갈린다. 재회를 꿈꾸지만 다시 만나지는 못한다. 각자 서로를 아쉬워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게 맞다. 재회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게 끝나는 관계란 현실에서 드물다. 그래 보이는 것들도 사실 ‘그런 척’의 결과물일 뿐이고, 그나마도 바닥은 보고 또 보여주고 싶지 않은 노력이 도와줄때 가까스로 가능하다. 애초에 만나지 않았으면 가장 좋았고,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것이 그 다음으로 좋다. 억지로 일궈 손에 넣은 재회는 어색함으로 시작하고, 후회로 끝나야 바람직하다. 극적인 재회를 공상한 현실의 인간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과거의 자신이 그리워 재회를 시도한 자는, 더 추한 미래의 나와 조우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쳐야 공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