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본점 와인 매장에서 겪은 일
지난 목요일, 롯데 본점 와인 매장에 들렀다. 대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와인을 산다. 어차피 주중에는 마시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으므로 많이 쟁여둘 필요도 없고, 자주 들러서 둘러보고 사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다.
백화점 매장에서 한 번이라도 와인을 사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매 패턴에 대해 알 것이다. 손님이 발을 들이면 ‘찾는 게 있는가’라고 묻고, ‘특별히 없고 둘러보겠다’고 답하면 대개는 그냥 내버려 둔다. 계속 따라 붙는 경우라면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볼테니 혼자 보겠다’라고 한 번 더 말하면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거기까지 얘기를 했는데도 직원이 계속해서 따라 붙어다녔다. 롯데 본점의 와인 매장은 정사각형에 복도 쪽으로 좁은 직사각형이 따로 붙어 있는 평면인데(그 뒤에 창고가 하나 있는 걸로?), 일부러 거기로 옮겨서 보는데도 정말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물론 말없이 따라붙어도 부담스러운데 정말 끊임없이 말을 시켰다. 주로 원하는 가격대와 품종, 맛에 대한 질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응대를 1. 자기 일 열심히 하는 것이다, 2. 그들도 팔아야 한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미 매장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무엇인가 사 가지고 나가겠다’라는 생각하고 있으며, 도움이 없이도 고를 수 있고 그걸 크나큰 재미로 여긴다. 누군가는 정말 도움이 필요할테고 그때는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해야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니 막말로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왜 그들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못하는 것인가. 자기가 일하는 수입사의 와인을 팔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붕은 하나지만 대개 와인 매장에는 여러 수입사의 와인과 그 담당 직원이 모여있다. 누군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조금만 둘러봐도 그것이 (나름의)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위한 시도(또는 발버둥-발악)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내가 그냥 특정한 와인을 달라거나 집어들어 사지 않는다면, 대개 그 “추천”이라는 것은 자기네가 수입한 와인을 사게 만다는 식으로 흘러간다. 이날도 어쩌다가 생각한 론의 화이트(비오니에로 만든)을 물어봤더니 그건 품절이라는 대답에 이어 약 30초 후 어디에서 나타난지도 모르는 직원이 옆에 달라부터 ‘이것도 같은 론 지역의 화이트다’라며 별로 관심 없는 와인을 “권한다.” 괜찮다, 관심 없다고 말할때의 그 표정을 나는 감당하기가 힘들다. 예전에도 같은 매장에서 다른 직원에게 이런 걸 한 번 당한 적 있었는데, 관심 없었지만 싼 거라 대세에 지장없었으므로 그냥 들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추천은 늘 이런식이다. 옆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A 품종의 한 와인에 대해 물어보면 ‘이것도 괜찮은데 어떠냐’ 며 다른 와인을 들고 와서 내민다. 물론 100% 자기네 수입사의 와인이다. 대체 이러한 추천은 손님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판매자를 위한 것인가. 이 날은 심지어, 그날 따라 머리에 떠올라 물어본 모든 와인이 품절이라는 대답에 ‘이런 행사할때는 자기네 단골한테 문자든 뭐든 돌려 다 판 다음에 쭉정이만 이런 식으로 떠넘기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백화점 와인 매장을 두루 다녀봐도 롯데가 특히 심하고, 특히 이날 나를 따라다닌 직원이 정말 심했다.
한정된 예산, 수입된 물량 등등의 열악한 여건에서도 와인은 백 만 가지 방법으로 고를 수 있다. 진지하게 주말에 해 먹는 음식에 따라 눈에 불을 켜고 짝을 찾을 수도 있으며, 그냥 쓱 들어가 할인 폭이 큰 걸 고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병의 모양이나 딱지의 그림, 색깔, 심지어 양조장 이름이나 그 글씨체로도 집어 들 수가 있다. 예산도 엄청나게 비싼 걸 사는 경우는 드물지만 유동적이라, 한 3만원 쯤 하는 걸 사겠다고 갔다가 10만원 짜리를 살 수도 있고, 반대로 7만원쯤 하는 걸 살까 갔다가 2만원짜리에 꽂혀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때로 이성적이지 않는 판단을 할 때도 있지만 그게 소비고 나에게는 즐거움이다. 게다가 요즘은 인터넷을 어디에서나 쓸 수 있으니 마음에는 드나 정확한 정보가 없는 경우라면 확인도 즉석에서 가능하다. 요컨데,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러한 즐거움을 옆에 달라붙어 빼앗는다면 결국 그건 구매욕구의 감소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날도 달라 붙은 점원과 어디에선가 나타나 별 관심 없는 와인을 권하는 다른 직원 등의 무차별적인 공세에 나는 멘붕 직전의 상태까지 접어들었으니, 간신히 후퇴해 일단 식품 매장에서 간장 한 병을 사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가 그 공세 속에서 곁눈질로 봐두었던 것 하나와 예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다른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어느 수입사에서 일하시느냐. 사람이 눈치가 빤한 건데, 이건 사도 괜찮겠느냐’라고. 직원은 롯데 소속이라 했고,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로 집어든 와인은 롯데가 수입한 것이었다. 물론 계산 할 때는 두 와인 수입사의 직원이 모여 각각, 내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했다.
결론은 그거다. 자기 일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판단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손님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와인을 고르는지 모르고, 그만큼의 열렬한 관심이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런 매장에서 직원하고 나눌 수 있는 대화는 내가 좋아하는, ‘술덕’류와 가질 수 있는 그런 즐거운 대화가 아니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닌, 그저 팔기 위한 대화인데다가 실제로 필요한 정보도 주지 않고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술에 대한 애정이 삶이나 그의 일부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즐거운 대화, 거기에서 얻는 정보 같은 건 전혀 없고, ‘이 손님에게 빨리 팔고 다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그런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부탁하건대 ‘괜찮다’가 정말 괜찮다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사람을 그냥 좀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일단 가게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뭐라도, 반드시 살테니까. 이제 목에다가 ‘저는 정말 괜찮으니 제발 좀 내버려 두십시오’라는 팻말이라도 걸고 가야만 하는 건가.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단 와인뿐만아니라 백화점 전반에서 일어나서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저도 좀 고민하면서 물건을 고르는 편이라 가만 두면 좋겠는데 정말 끈질기게 따라붙는 판매원들이 있죠. 그런데 일부에서는 따라붙지 않으면 또 불쾌하다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판매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곤란하긴 할 것 같아요. 물론 와인처럼 업체마다 이익이 다르다면 문제는 또 다르겠습니다만…
네 맞추기가 어렵기는 한데 괜찮다고 그러면 그냥 놓아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쇼핑할때 누가 옆에서 이것저것 권하는게 싫습니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혼자만의 그 시간이 쇼핑의 매력이자 하이라이트인데 그게 생략되는 기분이거든요..팻말을 들고 입장하는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네 그리고 와인은 고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