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Haihm)-Point 9


‘IDM’이니 하는 딱지를 붙이는 한편 소리의 질감이나 공간감을 논하기에 앞서, 하임(Haihm)이 클래식 피아노를 오랫동안 공부한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거기에서 두 줄기로 이해의 가지를 뻗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전자음악’이라는 장르의 껍데기, 또 그로 인한 저 질감이나 공간감 이전에 그가 좋은 선율을 자아내는 작곡가라는 점이다. 실제로 앨범에서도 진짜로 두드러지는 곡의 요소는 그 소리의 켜를 헤치고 앞으로 다가오는 선율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소리 만들기의 콘셉트 또한 궁극적으로는 클래식 악기 연주자가 기술을 다듬는 차원이라는 점이다. 이번 앨범의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인간이 연주하는 악기의 소리를 재현하고자 했던 1집에는 분명 그러한 ‘멘탈리티’가 바탕이 된 과유불급의 공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한 점을 감안하고 들을때, 2집에서 두드러지는 점 또한 두 가지로, 모두 변모라기 보다 탈피다. 첫 번째는 박창학의 가사가 대표하는 ‘소녀 취향’의 분위기로부터 벗어났다는 점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래와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미를 좇는, 즉 자아도취적인 순수주의자(*주 1)의 면모를 지닌 박창학의 가사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이 앨범의 가사 및 그와 접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 말랑말랑한 콘셉트 및 프로덕션을 좋아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러한 면모를 벗어버린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두 번째는 바로 앞 단락에서 언급한 ‘과유불급’으로부터의 탈피다. 이는 만들려 의도했던 소리 자체의 변화와도 관련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인간의 연주를 재현한 소리 대신 치찰음이나 파열음 등의 글리치(glitch) 사운드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로 인해 리듬의 피치가 올라간 동시에 몇 켜를 덜어내어 훨씬 가볍고 자연스럽다(하지만 몇몇 효과음은 1집의 것을 반복 사용하고 있어 다소 구태의연하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결론은, 이 앨범이 1집에 비하자면 훨씬 더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에 가깝지 않으냐는 점. 하지만 말 그대로 EP라 당장 손에 쥔 곡들만으로는 전체를 관통하는 색을 완전히 읽기가 어렵다는 점은 아쉽다.

*주 1: 심지어 윤상이 진정 음악가로 활동하던 전성기에도 박창학의 가사를 좋아해본 적이 없는데, 몇 해 전인가 노영심 콘서트에 나와 노래부르는 걸 보고 완전히 실망했다. 물론 노영심의 콘셉트가 ‘덜 자란 애어른’이라지만 굳이 거기에 숟가락을 얹어 자신의 음악가(작사가 아닌)적 욕망을 발현해야할 필요가 있는가? ‘아마추어 콘셉트’로 밀고 나간다고 진짜 아마추어리즘을 보탤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