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ers (2007) – 우뢰매를 추억하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수원 시내 중심의 팔달산(그러나 ‘팔닥산’ 이라고 불리우던-_-;; 수원 토박이가 아니면 다들 그게 산의 공식 명칭인줄 알고 있더랬죠) 중턱 어딘가에 있는 시민회관에서 그 당시 최초로 실사와 만화영화를 합성했다는 변신 로봇 ‘우뢰매’ 를 보았던 것이… 대체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아침 열 시부터 줄을 서서 오후 서너시쯤에나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자칭 ‘변신 로봇’ 이라는 우뢰매는 아마 영화 마지막 5분 정도를 남기고 딱 한 번 변신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 실사와 만화의 합성이라는 건 너무 조악해서 동심으로 가득찬 어린이였던 저조차 질색할 정도였고 근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뢰매가 변신 로봇이라는 주장은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서 정말 실사와 같은 트랜스포머를 보게 되었는데, 그 유치한 줄거리의 흐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혹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별 다를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것은 만화를 뼈대로 한 실사영화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받게 되는 느낌은 실사를 차용해서 찍은 만화영화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만화에서 등장하는 로봇들이 발달된 컴퓨터 기술의 은총을 입어 엄청난 현실감으로 화해 실제와 같은 시각적 느낌을 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설정이나 등장인물의 성격 및 그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연기는 그저 딱 만화 영화를 찍을 수준에 불과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전형적인 미국의 유치한 유머와 이제는 너무 자아 도취가 심해 탈출 및 회생불가라고 생각되는 마이클 베이식의 매너리즘 액션묘기떡칠을 합치면 애초에 이 영화에 무엇인가 기대를 해야 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애초에 저는 아무런 기대가 없었고 그저 얼마나 로봇들이 부드럽게 변신하나를 볼 생각 정도로 갔기 때문에 그 부분에 어느 정도 흥분을 느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실망할 이유는 더더욱 찾지 못했던 것이, 애초에 이 영화는 그렇게 밖에 만들어질 운명을 타고 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베이, 독립 기념일 개봉, 선과 악의 대결, 오토봇들의 미국차로의 대체(저는 트랜스포머 매니아는 절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정보를 접해볼까 인터넷을 뒤졌더니 Bumblebee가 원래 Beetle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이름도…)… 요즘 날로 망해가는 미국 차들의 광고가 전부 트랜스포머를 차용한 것으로 바뀐 것도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라도 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어차피 미국차 아무도 안 타니까… 애초에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선과 악이 두드러지는 대결구도를 전격 차용한 줄거리가 우뢰매 수준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그것도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결국 들었습니다.
어차피 마이클 베이 밑에서 영화 찍는 마당에, 옵티머스 프라임이나 메가트론 모두 심오한 우주의 진리나 삶의 철학적 의미를 영화에서 설파할 수는 없는 노릇… 이런 미국 냄새 풀풀 나는 영화가 도저히 보기 싫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냥 안 보시면 될 것 같고, 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들이 궁금하다 싶은 분들은 약간의 차가운 마음으로, 또 원래 트랜스포머 매니아셨던 분들은 다시 타오르는 동심으로 (돈 버릴 각오하고) 보시면 솔직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우뢰매를 지금 다시 만들어도, 우뢰매가 우아하게 변신할 뿐이지 줄거리 자체는 심오해 질 수 없을테니까요.
*덧글: 이번달 Wired지의 트랜스포머 기사를 읽어보니, 서른 몇 살 먹은 미국 남자가 법의 힘을 빌어 이름을 Optimus Prime으로 바꿨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