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란의 의미

먹어보았다 드디어 감동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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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역시 왈도체는 취향이 아니다. 어쨌든, 감동란을 먹어보았다. 정말 ‘감동’이라는 단어까지 들먹어야 할 만큼 훌륭한 계란인가? 맥락을 보면 그렇고, 그냥 계란만 놓고 보면 아니다. 계란은 흔한 식재료지만 그만큼 적절한 이해와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비교대상인 편의점의 구운 계란이든, 쫄면이나 냉면 위의 삶은 계란이든, 함박 등등 위의 반숙 ‘후라이’등, 거의 모든 계란이 심하게 과조리 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숙 후라이처럼 제대로 익히지 않았다. 전자는 너무 많이 익혀 흰자는 질기고 노른자는 부스러지며, 후자는 그걸 피하겠다고 아예 위를 익히지 않아 그냥 날계란이나 다름없다. 제대로 된 중간지점을 찾는 것이 올바른 조리의 목표라는 걸 감안한다면 계란 또한 그 넓은 범위 전체가 실종된 다른 음식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이 계란이기 때문에 되려 실종 또는 결핍이 더 두드러진다. 이러한 맥락 때문에 이 계란이 굳이 ‘감동란’이 되어야 한다면 거기에 굳이 정색하고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흰자도 질기지 않고 노른자도 적절히 익었으며(좀 덜 익었더라도 상관없을 듯), 두부 간수의 맛(? 비밀이라는 소금처리 과정의 부산물일까, 아니면 흰자의 황 냄새가 영향을 미치는 걸까?)이 살짝 나기는 해도 적절한 소금간 또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란 자체가 꽤 맛있다. 백화점부터 동네 슈퍼마켓까지, 또 유기농부터 동물 복지 등등까지 이런저런 계란을 먹어봐도 그렇게 흔한 만큼 맛있는 게 드문 계란의 현실에서, 편의점에서 파는 삶은 달걀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건 아주 바람직하다.

그저 바란다면, 감동란의 “감동”이 독립적인 사건으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대량 생산 제품으로서 이 정도의 수준을 갖췄다면 적게는 (삶은) 계란이든 크게는 편의점의 식품류든 기준으로 삼기에 손색이 없으니 소비자의 안목과 품질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먼데서 엄청난 걸 굳이 찾을 필요 없고, 이런 계란만이라도 편의점에서 꾸준히 살 수 있는 현실만 되어도 삶은 충분히 덜 불행해진다. 누가 알겠나, 덜 불행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요소들을 괴혼처럼 차곡차곡, 혹은 덕지덕지 쌓거나 붙여 나가다 보면 종내에는 행복해질지. 그러므로 이번에는 나도 감동에 동참하겠다.

*사족: 계란 잘 삶은 방법만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외식의 품격’에도 소개한 바 있는 이 방법이 가장 쉽고 편하다. 스마트폰의 타이머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요령.

2 Responses

  1. t says:

    삶은 계란 하나에 감동받을 만큼 먹고사는게 참 팍팍합니다.
    이거 이제 한판 단위도 판다고 해서 놀랐네요.

    • bluexmas says:

      네 이걸로 기뻐하는 건 좋지만 이것만으로 기뻐하는 거면 팍팍하죠. 한 판 단위 나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