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월요일인가, 편집자에게 사죄의 마음을 담아 메일을 한 통 썼다. 밀린 책의 번역 일정에 관한 것이었다. 넉넉잡아 전체의 65% 정도의 과정을 지나는 지점이라 이젠 업데이트를 해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리고 밀려 거의 잠수를 타다시피한 상황이라 연락하기조차 미안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피한다고 될 일도 아니며,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진척이 있었다. 죄책감에 오래 시달렸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닌가.

옮기는 게 여러 모로 참으로 고통스러운 책을 붙들고 있다. 뭘 맡긴다면 습관적으로 ‘3개월’을 외치는데, 절대 그렇게 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앞으로 또 뭘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에겐 역대급으로 남을 것이다.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전에 없는 ‘완전 분해 후 재조립’이라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읽으면서 타자를 치는 사이에 재구성이 불가하다니, 이것도 별 일이다 싶다. 물론 그건 문장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그만큼 고통스럽지만 덕분에 배우는 것은 물론, 생각도 많이 한다. 번역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쓰기의 안에 머무르는 일이니 좋아하고, 또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지만 나는 스스로를 능숙한 번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언어와 배경지식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 사이에서 책과 원저자에게 맞는 좌표를 찾는 능숙함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책의 상황이 다르니 그걸 살려줘야만 하는 것이 의무라고 보는데, 무엇보다 가장 정확하다고 좌표를 일단 믿기가 어렵고 또 믿은 다음 말뚝을 꾹, 찔러 박기도 어렵다.

물론 그건 우유부단함이나 자신없음과는 다르다. 이 모든 것의 기원이 궁극적으로 내 글이 아니며, 다른 언어라고 해도 이미 완결된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걸 지나치게 자각하는데서 오는 다소 쓸데없는 신중함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그냥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솔직히 내 글을 쓰는 게 훨씬 더 쉽다. 틀도 내 마음대로 짤 수 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자료는 아예 쓰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거 아니고도 잘 쓸 수 있는 자료는 넘쳐나니까. 하지만 번역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모든 걸 피해갈 수가 없고, 어느 지점에서 막히기 시작하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갈 수록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어려움이 ‘이미 완결된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지나친 자각과 만나면 ‘멘붕’이라는 시너지를 일으킨다. 그래서 이번 경우처럼 반 잠수를 타는 상황도 생겨버린다.

어떤 출판사에서 이제 판권이 풀린 고전을 내면서 ‘나의 해석이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간단하고 또 감정 없이 말하자면 터무니 없다. 이유도 아주 간단하다. 나의 해석이 정답이 되려면 번역자가 원저자가 되어야 하는데, 번역자는 무한 수렴이 가능할지언정 원저자는 될 수 없다. 뭐 원작자가 “어깨를 툭 쳤다”고 하니 접신이라도 한 모양이다. 또한 원저자가 된다면, 또는 원저자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글을 해석해야 할 이유도 없다. ‘쓰기’와 ‘해석하기’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아주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해왔는데, 나의 예상보다 상황이 우둔하게 돌아가는 걸 보면서 쓸데없이 감정이입을 좀 했다. 상황을 우둔하게 돌리는 논리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486 마초의 그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는데 ‘저 사람이 사장인가’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한다. 이 무슨 우스운 일인가. 잘 모르겠다.

실로 멍청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름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붙들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생각하던 차, 대체 번역이란 건 뭐고 나는 어떻게 글을 쓰고 옮겨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어줬다. 답은 아주 많은데 굳이 한 가지만 꼽자면,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되겠다. 이토록 확실한 반면교사는 정말 ‘오랜만에 처음’이다. 그 바닥에 발을 걸치고는 있지만 의외로 이야기를 듣는 구석은 거의 없는 마당에, 문제로 삼은 예전 번역본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해서 주워 들은 기억이 있다. 문제가 있다, 는 것.

비판의 수단과 방법만을 문제 삼아 비판하는 건 문제다. 하지만 그건 비판을 비판하는 대상이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되려 그 반대로, 비판을 먼저 제기하는 쪽이 그 수단과 방법만으로 책잡히지 않도록 신중해야한다는 의미다. 나는 그 새로운 번역본이 비판 대상의 문제에 건전하게 접근할 기회나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 그럼 분명 현재보다는 상황이 덜 우둔하고 또 긍정적으로 흘러갔을 지도 모른다. 동기가 복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방법으로 그게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믿었다면 참으로 안타깝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설사 약자라고 해도, 그 사실의 확인이 비겁함에 면죄부를 선사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당신이 대체 어떤 구석에서 약자라는 말인가.

 by bluexmas | 2014/04/20 02:10 | Book | 트랙백 | 덧글(1)

 Commented by 벅벅 at 2014/04/20 08:44 
이러한 노고 덕분에 좋은 책을 접하네요고생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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