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ip is sinking

굳이 그런 트윗을 날린 이유는 그렇다. 어젯밤 소파에 누워 트위터를 뒤적이다가 아무 생각 없이 몇몇 링크를 따라가 글을 읽었다. 그냥 한마디로 너무 재미가 없었다. 정말 어떤 감정도 크게 불러 일으키지 않는, 그냥 굉장히 단순하고도 무덤덤한 재미없음이었다. 이를테면 ‘이야 #발, 진짜 @나 재미없다!’ 뭐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격정적으로 재미없다면 차라리 낫다고 본다. 왜냐면 분노도 관심이 있어야 치밀어 오르니까. 그런게 아니었다. 그냥 마음 속에 초등학교 과학 실험용이었던 꼬마전구가 불량이었는지 정말 찰나 동안만 불이 들어왔다가 픽-하고 나가는 느낌의 재미없음이었다. 한마디로, 정말 재미없게 재미없었다. 막말로 ‘쿨내’나는 부류에 대한 같잖음이랄까 뭐 그런 감정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내 안에서 스러져 사라지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이건 뭐 이제 더 이상 인간적인 감정이 실리지 않는 재미없음, 무장해제의 재미없음이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체 이 거대한 무미건조함 및 의미없음은 무엇일까. 일종의 집단 질병 같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정작 이 안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 보인다는 것이다. 뭔가 새롭고 참신하며 혁신적이라고, 진짜로 믿는 것 같다는 말이다. 난 그냥 남녀노소 너나할 것 없이 한 서른 살부터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하게 저물어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실제로 무슨 학교에서 신입생 군기 잡는답시고 보낸 문자 등등을 보라. 내가 올해로 대학 입학한지가 20년인데 그때에도 적어도 난 그런 경험을 전혀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부류는 이미 열아홉, 스물부터 찌들어 버린 것 아닌가.

한마디로 그냥 이런 상황이다. 난 그런 세계를 잘 모르는데, 어딘가 가면 내가 20년 전에 영어 학원 다니면서 그랬던 것처럼 서로 영어 이름 지어 부르고, 여권에도 가운데에 영어 이름을 넣는다더라. 그 이유는 대체 뭘까. 서양인에게 부르기 쉬운 이름을 알려주면 더 친해질 수 있거나, 혹은 영어를 더 잘하게 되거나, 그로 인해 동경하는 세계의 일원이라도 된 것 같은 환상에라도 빠지게 되는 걸가.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찰스니 미셸이니 하는 영어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토익 점수가 올라가거나, 회화 한 마디라도 잘 하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동경하는 세계의 일원이 동경하고 싶을 만큼 쿨하고 너그럽다면 부르기 어려운 이름 때문에 덜 친해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자기 원래 이름을 동경하는 세계의 멋진 일원들이 제대로 발음할 수 있도록 가르칠만큼의 영어를 하는 건 어떤가. 차라리 그게 더 그 동경하는 세계의 일원에게 쿨한 방법과 사람으로 대접받지 않겠느냐는 거다.

아니, 난 사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영어 이름 지어 부르고 가운데 이름 집어 넣든 말든 솔직히 알 바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런다고 해서 정말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굳이 영어로 다시 만들어 불러야 하는 그 수고스러움과 그게 자아낼 제 삼 세계의 비루함 정도는 남을 수 있겠지. 누가 나더러 ‘양식 우월하다고 말하는 “사대주의자” 아니냐고 얘기한다던데 내가 진짜 사대주의자라면 동경하는 세계의 일원이나 더 나아가 세계 시민 대접을 받기 위해서라도 영어 이름 한 번 쯤 영어권 국가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만들어 봤겠지. 구차해서라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 세금 내고 사는 마당에 이름까지 바꿀 필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리가 없으니까.

자꾸 이름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데, 좌우지간 그렇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 것도 새롭지 않다는 거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지금 이런 방식으로는 전혀 새로와질 수가 없다고. 뭘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람들이 새롭다고 생각하는 건 해외, 특히 그나마 좀 알아먹기 덜 어려운 영어권 국가에서 유행하는 걸 몇 년 늦게 가져다가 개인적인 능력 부족과 집단적인 이해 부족으로 인해 열화해 적용하는 걸 ‘우리 성향/입맛/취향’에 맞췄다고 둘러댄 뭐 그런 것 아닌가. 그게 대체 어떻게 새로울 수가 있느냐는 거다. 나?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거기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고, 그렇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그 나물, 그 밥의 푸성귀 한 줄기, 밥 한 알이며 이 거대하고 지루한 열화판 서구 문명 축소판의 공동 건축가이자 공동 노동자이자 공범일 뿐이다. 그저 나는 단지, 상황이 너무나도 빤하고 지구마저도 이렇게 좁은데, 게다가 우리가 동경하는 세계에서 유행하는 것을 바로 들여오기에도 소화 흡수하는 능력과 시간과 노력을 100% 들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대체 누가 어떤 용감한 마음으로 ‘내가 새롭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거다. 그건 정말 내가 새롭다고 믿기 때문인가, 아니면 일단 나부터 속이고 남을 속이자는 심보 때문인가, 그도 아니라면 나는 안 속지만 그래도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속은 척, 믿은 척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어찌되었든 다 좋은데, 배는 분명히 가라앉고 있다. 채 100년도 안 된 과거 허허벌판 시절에 “우리”를 살려줬다고 믿은 그런 개념들이 우리를 야금야금 좀먹어서, 배가 분명히 가라앉고 있다고. 새로움 코스프레 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때까지 즐기는 것이 만일 목표라면, 다들 실컷 즐겨주기 바란다. 바닥이 이미 많이 가라앉았으므로. 먼저 심해의 어두운 맛을 본 사람들이 그런다지 ‘생각보다 바다가 깊다’고. 곧 알게 되겠지, 대체 얼마나 깊은지.

 by bluexmas | 2014/03/11 00:42 | Life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4/03/17 11:25

… 위의 이미지와 같은 내용의 트윗을 했다. 그걸 하게 된 연유는 바로 이 글에 쓴 바 있다. 보시다시피 이미지에는 나의 트윗만 담겨 있지 않다. 바로 그 트윗 대상의 반응도 담겨 있다. 실로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두 가 … more

 Commented by 랜디리 at 2014/03/11 03:47 
저는 가급적이면 영어권이랑 얘기하거나 그럴 때는 영어 이름을 쓰는 편입니다.

반농반진인데, “차라리 자기 원래 이름을 동경하는 세계의 멋진 일원들이 제대로 발음할 수 있도록 가르칠만큼의 영어를 하는 건 어떤가.” 제 이름은 이렇게 제대로 발음하더라도 뭔가 엄;; 하기도 하고, 또 갸들이 발음하기 편하잖아요 -ㅂ-;

그냥 뭐 먹고 살려다 보니까 그게 편하더라구요. 사실 블루마스님 이름은 영어로 얘기해도 발음이 괜찮고, YJ 정도로 부를 수도 있잖아요 ^^;; 저는 그렇게 부르면 그것도 뭔가 말도 안 되는 발음이 돼서;;;

 Commented by p946612 at 2014/03/14 20:32 
아.. 저도 외국에서살때도 한번 외국이름짓는다는생각해본적없었는데,, 몇년전 이직하고 직속상사가 무조건 지으라더군요.,, 세례명으로 대체해 놓고서도 아직도 참 찝찝합니다..머 영업용이니까하고 위안삼기엔 위로가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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