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20년

어디를 갔는데 누가 ‘학교는 졸업하셨죠?’라고 물었다. 하하. 이봐요, 제가 대학 들어간 해에 태어난 애들이 올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다시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꼭 20년 만에. 그 20이라는 숫자와 이런저런 개인사에 얽혀 그냥 잠시 감상에 젖었다. 그 세월이 주마등처럼 쫙 스쳐 지나갔다. 스무살 박철수(가명)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미팅으로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환상에 휩싸여 기회 닿는 미팅마다 고개를 들이밀었으나 ‘이제 퀸카(아 이런 표현을 썼다니-_- 수치스럽다) 해빙기야’라는 친구들의 말과 달리 나오는 여성들의 얼굴에선 언제나 찬바람이 휘몰아쳤으며, 그런 실패를 거듭한 끝에 곰곰이 자기성찰을 한 결과 ‘아아 나도 킹카(아 이런 표현을 썼다니-_- 다시 한 번 수치스럽다)는 아니구나’라는 걸 알고 미팅전선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아마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군대를 갔다지. 그리고 그 후 겪은 블랙홀 같은 세월…

어쨌든, 입학 20년의 개인사를 돌아보다가 좌절하고야 말았다. 대체 뭘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 이뤄놓은게 없어… 아, 그래도 생각해보니 이제 돈까스는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직접 구운 빵을 갈아 옷을 입혀서… 그때 돈까스를 좋아해서 그게 고정 메뉴인 식당을 자주 갔는데, 열심히 먹으면서도 주말에 빵 갈아서 돈까스 만들어 먹고 살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래, 아무 것도 못 이룬 건 아니구나. 적어도 돈까스는 먹을 수 있게 만들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한 입학 20년. 돈까스 한 쪽, 드실라우?

 

 by bluexmas | 2014/03/06 00:46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나녹 at 2014/03/06 00:59 

블랙홀 같은 세월…마구 와닿네요ㅠ직접 만든 빵을 갈아 돈까스재료로 쓰는 건 좀 많이 멋진듯여!

 Commented by Cheese_fry at 2014/03/06 04:47 

퀸카 해빙기… 아흑;; ㅎㅎㅎ

대학 다니는 내내 소개팅 한 번 없이 전 도대체 뭘 했단 말입니까. ㅜㅠ

 Commented by aLmin at 2014/03/06 13:19 

저는 피자를 ㅠㅠ
 Commented by 오르므 at 2014/03/06 19:25 

그 시절엔 킹카, 퀸카가 ‘표준어’였죠 뭐…

요새는 대부분이 바쁘고 여유가 없는 시절이니, 돈까스 자가제조 능력이 있다면 멋진 사람인 시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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