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테일러 커피와 커피의 온도
가로수길 커피 워커스에서 호주 카페 St.Ali의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는 이야기를 들어 다녀왔다(바로 위 사진).가운데가 빠진다는 느낌이 드는 커피였는데, 그 정도라면 분명 ‘너무 미지근하지 않나?’라고 물어볼만한 사람도 있을법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니 한 두 달전쯤 홍대의 테일러 커피에서 겪은 길이 떠올랐다. 콩 자체는 좋지만 볶는데 기복이 있다는 생각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닌데(동선도 썩 잘 맞는 편이 아니고), 마지막으로 갔을때의 아메리카노가 정말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나왔다. 거기 아메리카노의 온도대를 감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정말 터무니없이 뜨거웠다. 실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 사실 온도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는터라 어딜 가더라도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이 정도까지 높은 건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반응이 ‘문제 있을리 없다, 나갈때마다 확인을 한다’는 것. 그래서 컵을 내밀었다. 드셔보시라. 나온지 1분 이상 지났으니 초기 온도보다는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뜨거운 커피, 주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인정하고 커피를 가져갔다. 아마도 직원(또는 아르바이트)이 평소보다도 더 신경을 쓰지 않은듯.
나는 물었다. 커피의 온도가 너무 높은 것 아닌가. (내가 <외식의 품격>에서 언급한 것처럼) 6~70도대여야 하는 것 아닌가. 돌아오는 대답은 ‘그럼 손님들이 미지근하다고 불평해서 안된다. 그렇게 낼 수가 없다. 따라서 그보다 온도가 높아야 하는 것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그럼 혹시, ‘손님들에게 불평을 사지 않기 위해서 온도를 높게 내야 하지만 맞는 온도는 따로 있다’는 걸 생각은 하시느냐고.
숫자를 들먹이지만 사실 굳이 그래야할 필요도 없다. 사람도 동물이니 그냥 동물적인 감각으로도 헤아릴 수 있다. 입에 대었을때 ‘앗, 뜨겁다!’며 입술을 떼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온도는 너무 높은 것이다. 우리 국물 음식을 그렇게 먹으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니다, 그게 잘못된거다. 뚝배기에서 펄펄 끓을 정도의 국물이라면 사실 온도가 높아서 아무런 맛도 모른다. 분명히 기복이 있고 다른 단점도 갈수록 불거져 나오지만(이제 정말 갈 필요가 없노라고 느낄 정도), 하동관의 국물은 아주 뜨겁지 않고 그게 맞다(사실 요즘은 ‘빠른 손님 회전을 위해서 그런건가?!’라는 불손한 생각마저 들려하지만…). 나는 그게 의도한 것이라 생각은 하지 않는데(왜냐하면 그렇게까지 머리를 굴려 감출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므로. 만일 그렇다면 현실은 더 거지같은 것이고.), 터무니없이 높은 온도의 커피는 온도가 내려가면 갈수록 그 맛이 드러나 점점 더 마실 수 없어진다. 조미료 많이 넣은 가짜 고기국물이 뚝배기에서 줄어들수록 맛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건 완전히 반대의 상황, 즉 온도가 낮았다 올라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국내 생산은 덜하지면 고과당콘시럽 콜라가 미지근하면 얼마나 맛없는지(게다가 탄산도 빠지니), 국산 맥주가 상온에서 얼마나 마실 수 없는 수준인지 한 번 확인해보시라. 그래서 사실,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이 받았을때 바로 즐길 수 없는 온도의 음료는 다소 지나친 일반화의 위험이 따르기는 하지만 적정 온도를 찾아간다고 해서 더 맛있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GIGO(Garbage In Garbage Out)의 상황, 비단 커피만의 문제는 아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테일러 사장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물론 내가 뭘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파워블로거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누군지에 따라 대응이 바뀌는 것도 웃지 않은가?). 요지는 그러했다. 온도를 비롯해 원하는 것이 있지만 손님 대다수가 원하는 것에 맞추려니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 솔직히 요즘은, 이곳에서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손님에게 맞추기 위해 조정(혹은 타협)하지만 맞는 상황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을 거의 믿지 않는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이런 일은 자기가 원하는 구석이 있어야 가장 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잘해도 실패의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커피는 결국 기호식품이라 이게 설사 온도가 아니어도, 또한 최적의 상태에서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손님(좋은 표현이라 생각 못하겠지만 ‘Educated Guest’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을 맞아도 완성도 다음 단계인 취향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어찌되었든 한편으로 사업이고 또 생계니까 이해는 가지만, 다수에게 맞춰주는 시도가 결국 하향평준화는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취향이 구매의 원동력인 사업도 결국 그 취향이 추진력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그래서 이 나라의 음식산업이 결국은 풍요속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항상 세부사항을 말한다. 성패는 거기에 달려있다. 음식에서는 결국 온도와 향(신료)다. 온도는 Taste에, 향은 flavor(우리가 ‘맛’이라고 일컫는게 85%는 사실 향이라고 하니까. 코를 막고 음식을 먹으면 맛을 모르는 것처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세심함을 찾지 못한다면 사실 맛에 세심함이 없는 것이고, 거기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찾을 수 없다면 발전도 없을 것이다. 이건 감각 이전에 학습이 필요한 문제다.
*사족: 그래서 커피는 온도가 낮은 걸로 한 컵 다시 받았고, 가게를 나서는데 그보다 더 낮은 온도로 한 컵을 그냥 주시더라. 후자가 더 나았다.
*사족 2: 사람들이 이 커피를 마시고 뭐라고 그럴지 궁금하다. 분명 우리나라에서 쉽게 마실 수 있는 것보다 온도가 낮은데, 그렇다고 ‘아 이상하게 미지근하네’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외국에서 바리스타 챔피언십 입상권자가 직접 와서 내려주니 ‘오오 커피는 원래 이게 맞는거지?’라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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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bluexmas | 2014/02/16 17:59 | Taste | 트랙백 | 덧글(4)
입도 대기 힘들 정도…
그 반면 유럽에선 특히 이태리에선 좀 따뜻한 정도…아마 65-70도 정도,,,
사람들이 뜨거워서 펄펄 끓는 탕국에 익숙해서인지
좀 미지근하다 싶으면 주문 캔슬해서 남겨 뒀던 것 주는것 아닌가 의심도 한답니다… 음…
뜬금없지만…
며칠 전 어느 식당에서 MSG 맛이 강하다고 식당 주인과 말씨름하다 팬 부부가 있었죠…
도대체 왜들 이러는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테일러 커피 가끔씩 가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믿고 다닐만한 균일하고 좋은 맛을 내는 카페 찾기가 꽤 힘드네요 ^^
네, 안 같지 꽤 됐습니다만 아직도 신맛 많이 나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