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스 쿠키: 온도와 무게, 지방과 유화

예전에 벤스 쿠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덜 구웠다’가 내 평가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는데, 한편 유지방의 비율 때문이라는 의견도 들었다. 그래도 속이 지나치게 축축한 건 아닌가, 싶었데 작년 말 (개인적인) 선물이 열 개 가까이 들어와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몇 가지 요소로 나눠 따져보았다.

1. 무게

왜 굳이 무게로 달아 파는가? 의문의 근거는 조리 시간이었다. 참으로 뻔한 이야기지만, 같은 반죽이라도 크기가 다르면 익는 시간이 달라진다. 이는 효율이 최우선인 대량 생산에서 약점으로 작용하고, 결국 완성도를 균일하게 가져가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가져온 쿠키를 보니 크기가 다소 들쑥날쑥, 하지만 저울에 달아보니 거의 균일하게 80~81g 사이였다. 10g에 370원이라 했으니 개당 3,000원이 좀 못되는셈인데 그럼 정말 모든 재료를 홈페이지에 나오는 대로 썼다는 전제 아래 전혀 비싸지 않다(물론 맛을 본 바로는 한 입 이상 먹고 싶지 않았지만). 스타벅스에서 파는 “마가린(네네, 고갱님. 가공버터지 마가린이 아닙니다~)” 쿠키가 43g(이라지만 실제 무게를 달아보니 50g이 넘었다. 후한 인심?)에 2,000원이니 비교하면 원칙적으로는 훌륭한 셈. 다만, 왜 쿠키를 그렇게 크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잘 이해가 안 간다. ‘무거운 반죽-긴 조리시간-생산 효율성 저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가지 맛의 쿠키를 80g 먹는 것보다 40g짜리 쿠키 두 종류를 먹는게 더 좋지 않을까. 물론 이건 “본사”의 설정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2. 온도와 조리

열 개에 가까운 쿠

키를 뜯어보니 속을 따지기 전에 겉부터 살짝 덜 익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먹는데 문제는 아니지만 살짝 더 구워 가장자리가 바삭하다면 질감의 대조가 좀 생기지 않을까… 싶어 175도 오븐에 약 10분 정도 더 구웠다. 정확하게 맞는 방법인지는 조금 의심이 갔지만 일단 온도를 다시 올린 다음 조금 더 구운뒤 겉과 속의 변화를 보고 싶었던 것. 당연히 바삭해진 겉과 상관없이 여전히 축축한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것이 비단 오븐에 굽는 조리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유지방이 반죽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기정사실이지만, 비율 그 자체보다는 반죽이 오븐에 들어가기 전에 유화가 깨져 지방이 액체상태로 배어나온 것으로 보였다.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는 요소는 역시 온도. 마침 이번 시즌 <탑 셰프>에서도 주방의 높은 온도 탓에 버터를 밀가루에 입혀 만드는 비스킷을 실패해 탈락한 셰프가 있었는데, 그 속이 굉장히 흡사하게 축축했다. 물론 쿠키는 비스킷보다도 낮은 온도의 버터를 ‘크림화’하거나 아예 녹여서 쓰므로 상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온도가 높은 여건에서 만들거나 높은 지방 비율로 인해 질척할 수 밖에 없는 반죽의 온도를 낮추지 않고 구웠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한편 축축함을 감안하고 먹더라도 전반적으로 물렁한, 즉 ‘cakey’한 질감을 놓고 본다면 박력분 등 단백질 함량이 낮은 밀가루를 쓴 것 같은데, 이 또한 글루텐 형성을 위한 수분 흡수(적은 단백질-적은 글루텐 형성-적은 물 흡수)에 영향을 미쳐 역시 반죽의 축축함에 보탰다고 본다.

어쨌든 계속 궁금했던 차에 원하는 만큼 살펴볼 수 있는 쿠기가 들어와서 이것저것 들여다 보았다. 요약하자면 ‘단백질 함유량이 낮은 밀가루+높은 비율의 지방+굽기 전 반죽의 온도 관리’가 내가 역으로 추측해본 축축함의 원인이라는 것. 그리고 거기에 보태자면 구울때 반죽 사이의 간격에 따른 수분 증발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하지만 맛을 보면 결국 축축함보다 볶지 않은듯 비린 땅콩이나 진짜 바닐라일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맛이 오히려 더 걸린다. 이 모든 고민은 결국 ‘쿠키가 생각보다 까다롭고 복잡한 음식이지 않은가’를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듯.

 by bluexmas | 2014/01/16 16:34 | Tast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beautifulseed at 2014/01/16 22:04 
저 벤스쿠키 진짜 좋아하는데! 양이 좀 준다면 아마 그 브라우니 먹는 cookie dough 먹는 느낌은 안날거같아요. 두께가 어느정도 있으니 가능한걸지도?.. 레시피가 진짜 궁금한 쿠키 중 하나입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Commented by 자두 at 2014/01/17 01:01 
“벤스쿠키” 자체가 브랜드의 하나로 우리가 아는 쿠키가 아닌 벤스쿠키라고 생각해야 하는 레시피인 것 같아요. 영국에서 그런 덜 익은 듯한?! 촉촉함으로 인기를 끈 음식인 만큼요 –

 Commented by 시옷곰 at 2014/01/17 07:08
분명히 다른 레시피 쓰는 것 같기는 해요. 그렇지만 확실히 한국의 맛은 영국의 그맛이 아니라서… 그리고 한국쪽에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혀 문제를 못 느끼는것 같은 기분이구요. 몇년이나 즐겨 먹던 사람으로서 좀 슬프네요.

 Commented by 잘생긴 표범해표 at 2014/02/02 13:41 
“쿠키답지 않게 뭐 이렇게 덜 익혔어, 척척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쿠키와 케이크를 적당히 혼합하여 기존 쿠키와 탈피한 것 자체가 나름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머랭도 쿠키라고 할 정도로 나름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쿠키에 있기 때문에 그 쿠키다움이라는 것을 엄격하게 설정할 수 있는가도 의문스럽지만) 너무 케이크스럽게 만들었다곤 해도 쿠키모양 케이크라는 것이 줄 수 있는 새로운 매력이 있다면, 이걸 두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하는 게 합당한가… 라는 생각도 들구요.

전 그 비릿함보다는 지나치게 달고 너무 축축해선지 애써 넣은 버터의 존재감이 너무 부족했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개인 취향일 수 있습니다. 전 쿠키는 항상 크런키한 류가 아닌 쇼트브레드류를 좋아해서…) 싸구려 서브웨이 쿠키중에 라즈베리치즈케잌?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게 혹시 축축한 버전으로 나오면 벤스쿠키랑 비슷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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