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날 도시의 날씨는 ‘흐리고 비’

간혹 여행이 즐겁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건 나와 있는 곳보다 돌아갈 곳의 문제라고 본다. 돌아갈 곳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늘 목에 걸려 있어 때로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는 이야기. 거기에 걱정을 달고 사는 멍청한 성격이 양념의 구실을 한다는 이야기.

4주의 시간을 보내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삼백 몇십 일인가? 미국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온다는 도시에서 돌아와보니 이곳 또한 계속 흐리고 비, 나름의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는 징조다. 별 생각없이 기간을 정해 왔는데 운 좋게도 가장 좋은 날씨를 야금야금 맛보다가 떠난다. 이제 너무 많이 알아서 또 다시 오고 싶어질지는 모르겠다. 세금내고 일하며 살 곳이 아니라면 너무 오래 머물러 정을 붙이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늘 한다. 같이 살고 싶은 마음 없으면 차라리 썸도 안 타느니만 못한 거랑 비슷하려나.

동쪽으로 올라가 점심을 먹고 슬슬 걸어, 마지막으로 다리를 건너 집 아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 가운데를 흐르는 강을 건너는 것이 이 도시를 향한 바른 작별의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이 도시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와 보라고, 또 오면 강둑을 걷고 다리를 건너라고 하겠다.

어쨌거나 오늘도 날씨는 예외없이 ‘흐리고 비,’ 2년 전 며칠 들렀을때 보기 좋은 문구류를 파는 곳에서 책상에 올려놓는 카드 달력을 하나 샀었다. 어쩐 일인지 쓰는 걸 까먹어 작년 10월인가에 찾고 마치 진짜 시간을 허비라도 했듯 아쉬움과 미안함을 품었더랬다. 그 가게를 다시 찾아 내년을 위한 달력을 사서 열심히 책상에 놓고 쓰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았는데, 세상에 4주 동안이나 머무르면서도 다시 찾지조차 못했다. 그렇게 스쳐보내고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들이 널렸다. 사실 시간이라는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by bluexmas | 2013/11/04 16:47 | Lif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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