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 뒤로 숨긴 역자후기

뉴욕의 맛 모모푸쿠

데이비드 장, 피터 미한 씀 / 이용재 옮김

도서출판 푸른숲

332쪽, 36,000원

역자후기에 대한 생각은 아주 오랫동안 했다. 하지만 내가 나서서 ‘쓰겠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쓰는 나와 옮기는 나는 다르다. 후자는 나서지 않는게 맞다. 고민이 ‘나를 어떻게 드러내야 할까’여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역자후기는 청하면 쓰고 아니면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게다가 원서가 본래 지니고 있는 완결성에 내가 사족을 달고 싶지도 않았다. 출판사에서도 다행히 묻지 않았다. 책이 지난 주에 드디어 나왔고, 나는 그 후기를 여기에 쓴다.

‘요리책엔 셰프의 이데아가 담긴다’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200% 동감한다. 낼 수 있고 없음에 셰프의 실력과 지명도 등이 갈리고, 그 수준으로 또 한 번 갈린다. 지금 책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 인용을 못하는데, 마리오 바탈리의 반 전기 <앗 뜨거>는 1990년대 중반 뉴욕 레스토랑계의 풍경을 그의 시각으로 잠깐 소개하고 지나간다. 거기에 지금 스타 셰프로 바탈리 만큼이나 유명한 바비 플레이의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막 첫 요리책을 냈다’는 것이다. 지금 그의 요리책이 몇 권인가. 또 바탈리는 몇 권을 냈는가. 아마존을 검색해 한 번쯤 세어볼 만하다. 그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뉴욕의 맛 모모푸쿠>에는 그러한 이데아를 담기 위한 고민이 빼곡히 담겨있다. 요리책이기 이전에 에세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민을 담기 위한 고민’이다. 그만큼 고민이 이 책의 등뼈를 이루는 등뼈 역할을 한다. 고민 끝에 요리로 길을 정했지만 집에서는 (당연히) 탐탁히 여기지 않았으며, 스스로도 실력이 빼어난 축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배우기 위해 택한 일본행조차 잘 풀리지 않았으며 덕분에 발전의 기회도 어느 정도 잃었다. 결국 자신의 식당을 차리기로 마음먹고 망한 치킨윙집 자리를 간신히 구했지만 개업직전까지 사람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단 한 명의 부주방과 DIY로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끝에 가게를 열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아직 가늠할 수 없지만 아마도) 창대하리라.’ 바로 그의 레스토랑 제국의 씨앗이 된 <모모푸쿠 누들 바>다. 물론 <누들 바>의 개업 뒤에도 상황은 순탄치 않았다. 아무래도 셰프로서 모든 것을 끌고 갈 경험이 부족했던지라, 손대는 것마다 좌충우돌이며 실패의 쓴맛도 만만치 않게 보아야만 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모모푸쿠> 브랜드는 증식을 거듭하며, 결국 미슐랭 별에 빛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코>까지 세상의 빛을 본다. 여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 있는데, 뉴욕 타임즈 등을 거친 피터 미한의 다소 구어체스러운 문장으로 인해 바로 앞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다.

만일 이야기만 담겼다면 이는 요리책이 아니며, 셰프의 이데아를 완벽히 담아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뉴욕의 맛, 모모푸쿠>는 요리책으로서의 본질을 절대 홀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레시피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해 탈일 지경이다. 요리책이라며 ‘기름이 적당히 끓으면 재료를 넣고 떠오르면 건진다’는 레시피를 담고 있는 가짜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고도 스스로 ‘요리전문가’라 칭할 이들에게 이 책의 레시피를 권하고 싶다. 그만큼 레시피가 세심하다. 데이비드 장을 오늘날의 자리에 있게 만든 대표 요리의 레시피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그를 통해 조리의 기본 또한 익힐 수 있다. 역시 현재 책을 손에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지난 주말 나는 처음으로 굴(석화)를 내 손으로 까서 먹었다. 너무나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에 옮기면서 머릿속에 뚜렷한 그림을 각인시킬 수 있었으니, 작업이 끝난지 시간이 다소 흐른 지금조차도 기억을 더듬어 각 단계를 찬찬히 따라 깔 수 있었다. 어디 이뿐인가, 스테이크의 기본이며 5분의 노력으로 식탁의 표정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각종 절임이며 소스의 레시피 또한 집에서도 충분히 따라할 수 있을 수준의 문장으로 담겨 있다.

마지막은 맛이다. 여기에 담긴 음식을 정확하게 ‘한식’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라멘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듯, 그는 일식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 흔적이 요리 곳곳에 묻어있다. 한편 디저트는 굉장히 서양식이다. 콘프로스트의 맥아당과 옥수수맛을 우유에 우려 만든 시리얼 우유는 한식 위주로 먹었을 또래의 우리나라 30대 중후반이 좋아할 맛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혹시라도 ‘한식의 세계화’의 정답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한다면, 그건 말리고 싶다. 그 대신 맥락을 읽고 그 맛의 현재 좌표가 어디인지 고민할 것을 권한다. <모더니스트 퀴진>에도 소개된 그의 김치에 왜 설탕이 넉넉하게 들어가는지, 역시 그에게도 추억의 음식이었던 떡볶이가 우리가 즐겨먹는 것과 어떻게 다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굳이 깍두기를 자잘하게 갈고 배추김치로 맑은 국물은 콩소메를 만드는 까닭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뉴욕이 아닌 서울의 맥락에 놓인 이들에게 <뉴욕의 맛 모모푸쿠>가 존재해야할 이유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옮긴 이유다. 작년, 잘못 발을 들였던 부업이 한창이던 시절 도서관 메뚜기처럼 이 카페, 저 카페를 옮겨가며 옮겼던 책을, 그 이후 1년 동안 쓴 <외식의 품격>과 함께 소개한다.

 by bluexmas | 2013/10/22 17:05 | Tast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Cheese_fry at 2013/10/22 23:34 
앗! 두번째 책이네요. 축하합니다. ^ㅁ^ 모모후쿠 책 갖고 있어서 신기하기도, 반갑기도 합니다. 데이빗 장, 보댕 아저씨 쇼에 종종 등장하는데 좀 괴짜스러운 면이 있어서 흥미롭더라구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10/23 14:50
네 책이 동시에 나왔어요^^;;; 그런 면이 성공을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옮겨서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책이에요.

 Commented by Ithilien at 2013/10/27 05:06 
오옷. 책이 나왔군요. 축하드립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11/07 05:27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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