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뱃길

아라뱃길을 자전거로 왕복했다. 원래 추석 연휴 동안 계획했던 것인데 셧다운 모드로 쓰러져 있느라 못했다. 교정지 때문이었다. 내 글이 지면에 찍혀 나오는 걸 잘 못 본다. 그래도 이번 건 상황이 아주 좋은 거다. 열심히 보면 금방 볼 수 있으니까. 대신 한 서너시간 그러고 열서너시간 쓰러져 잔다. 생각이 많아지니까 그걸 차단하기 위해서 그냥 자는 거다. 행간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서 오랫동안 들여다보지도 못한다. 그래서 사실 한 사나흘이면 다 할 수 있는 일을 꽤 오래 끌었다. 처음 받고는 며칠 동안 잠도 못 잤고 밥도 잘 못 먹었다. 모든 의도를 이해하고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면에 찍혀 교정부호가 제법 찍힌 내 글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좀 더 잘 했어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이제 거의 다 끝나 간다.

지난 주에 절반쯤 갔다가 어두워져 돌아온 길이었다. 근데 그 이후엔 정말 아무 것도 없더라. 물을 따라 지루하게 쭉 가다가 그 끝에는 허허벌판이 나온다. 그리고 그 끝에 촌스러운 건물의 전망대와 여객선 터미널이 있었다. 전망대는 공짜고 그 윗층의 레스토랑인지 카페에서는 여전히 ‘피자, 파스타, 스파게티, 리조토’를 판다. 난 분명 언젠가 이탈리아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할 거라 믿는다. ‘이런 제길 우리 음식을 이딴 식으로 망쳐놓다니…’ 그 날이 꼭 올 거라 믿는다. 독한 싸구려 발사믹 식초를 탄두에 담아서 화생방 공격을 무차별로 가하겠지. 우린 다 죽은 거다. 그 전까지 가짜 피자, 파스타, 스파게티, 리조토 많이들 먹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하니까.

사진에 담은 갑문 통제 센터를 보라. 바다에 있는, 배와 관련된 건물이라고 배처럼 설계했다. 바로 망했다는 증거다. 건축과를 나왔다면 맨정신에 배와 관련된 건물이라도 배 모양으로 설계하지는 않는다. 분명 갑님이 그런 조건을 내걸었거나, 그래서 아무도 입찰하지 않을까봐 우려해 딱히 그런 조항을 넣지 않은 뒤 설계비를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바꿨을 확률이 높다. 어쨌거나 망했다는데는 별 차이가 없지만. 건축이라는게 좋은 재료를 쓰지 않아도, 첨단 구조를 지니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형상화을 저렇게 시킬 때는 백발백중 망한다. 그게 바로 내가 모 식당의 항아리 초콜릿 디저트를 보고, 또 그걸 보고 놀랍다며 트윗을 한 건축 “전문” 기자며 연예인 건축가를 한심하게 여긴 이유다.

집에서 20km를 조금 넘는데 바로 머리 위로 내리쬐는 태양에 맞바람 때문에 두 시간 반인가가 걸렸다. 허허벌판과 지루한 물길의 연속을 다시 헤치고 가는게 두려워 배편을 알아봤으나 김포로 들어가는 건 하루 한 편인데 그나마도 사람이 없어 안 뜨는 날도 있다고 장사 한 번 해본 적 없어보이고 ‘내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지만 편의점 장사할 사람은 아니지’라는 아우라를 온 몸으로 풍기는 편의점 계산대의 아주머니가 그랬다. 이게 뭔가 싶었다.

그래서 온 길을 그대로 되짚어 돌아왔다. 바람도 해도 없어 조금 나았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주말과는 달리 사람이 별로 없어 상대적으로 쾌적했다. 강변을 걸어다니면 자전거 끌고 다니는 인간이 거슬리고, 자전거를 끌고 다니면 걸어다니는 인간과 자전거 타고 다니는 인간이 모두 거슬린다. 오늘도 이어폰 끼고 타다가 잠시 중간에서 쉬었는데 아저씨 떼거리가 같은 벤치에 앉아 막 떠드는 와중에 한 아저씨의 자전거에서는 뽕짝이 크게 흘러나왔다. 문 닫고 차 운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음악은 큰 소리로 틀어놓고 다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걷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한 밤중에 라이트도 안 단 자전거 끌고 다니는 무개념은 뭘까? 만 몇천원이면 쓸만한 것 달 수 있다. 자전거는 엄청 비싸보이는데 라이트는 안 달고 달리는 인간들을 보면 전부 무슨 자전거 암살조라도 되나 궁금하다.

뽕짝 이야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강변의 온갖 노상 연주도 짜증난다. 싸구려 반주기도 싫고 싸구려 색소폰도 싫고 다 싫다. 홍대만이 노상 연주로 오염된 게 아니다. 한강, 안양천 다녀보면 곳곳마다 다 있다. 오늘 쉰 곳은 무슨 다리 밑이었는데, 토요일에는 무려 두 팀이 약 300m 사이를 띄워두고 시끄럽게 연주했다. 한 팀은 노래마저 불렀다. 고요함을 즐길 수 없다면 그건 쉬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는 한치도 어김없이 트럭들이 짱박혀 라면이니 부침개니 하는 것들을 판다. 세금 안 내고 돈버는 노점상 욕하면 ‘서민의 삶’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조건 반사로 나온다. 책 한 권 1년 써서 팔았을때 받는 인세가 그 부침개 한 장에서 나오는 이익보다 못할 거거든? 아마 그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 살거다.

동네로 돌아와서는 그대로 헬스클럽에 들렀는데 평소에 인사도 데면데면하는 보조 관리자가 ‘연휴에 뭘 그렇게 드셨어요 살찌셨네?’를 인사랍시고 던져 아주 당황했다. 당황한 나머지 웃느라 대꾸도 제대로 못할 정도. 나만큼이나 명절이랑 상관 없이 사는 사람도 없구만. 명절 음식? 나 닭가슴살 삶은 거 먹었어요 추석 연휴 기간에.

 by bluexmas | 2013/09/24 00:47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김정수 at 2013/09/24 08:53 
에효.. 한숨만 나오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4 10:07
뭐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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