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고향 방문

아침 일찍 일어나, 잉여 1호를 주섬주섬 챙겨 출가시키고는 영등포에 들러 고향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눈이 내린 풍경을 빠르게 뚫고 지나가는 기차라니 참으로 운치가 있을 법도 하지만, 그래봐야 사실은 26분 밖에 걸리지 않는 뭐 그렇고 그런 위성도시일 뿐이다. 그런 곳이라 딱히 고향이라고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초중고를 나왔다’라고만 말할 뿐이다.

실제로도 애착이 하나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보낸 시간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학군도 없는 동네였고, 초등학교마저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어 오랜 시간을 보낸 동네 친구나 동창도 없다. 물론 그런 걸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초등학교때는 꽤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어디라도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학교와는 최소한 ‘걸어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외곽 지역이었다. 물론 그 동네도 꽤 큰 도시고 초등학교때도 버스는 당연히 있었지만, 굳이 ‘걸어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살을 빼야 한다는 방침 아래 차비 없이 걸어다닌 나날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때로, 당시로는 그 동네라는 걸 감안할때 더더욱 흔하지 않은 아파트 셔틀 버스가 있어 늘 놓칠세라 발을 동동 굴러가며 간신히 타고 돌아오는 기억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통학 기억은 그 나이에는 끝도 없어 보이는 길을 또 걷고 걷었던 것으로 가득차 있다.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어땠더라? 잠깐 생각해보았는데 딱히 기억나지 않았다. 나름 정착해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살았던 동네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에는 늘, 요즘 그 오원춘 때문에 화제가 된 동네를 지나치곤 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기억하더라도 하지 않는다고 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그 시절의 기억 가운데 그래도 말할 수 있는 건, 처음으로 시내에 들어선 롯데리아에 갔던 순간이었다. 그 뒤로 몇 번 더 갔는지 모르겠는데, 마음대로 갈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중고생들이 당시 유행하던 ‘풍선체’로 하얀 레쟈 소파에 새까맣게 채워 놓은 낙서가 벌레처럼 무서워서라도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었다.

이런 기억 나부랭이들을 떠올리는 것조차 나의 현재와 연결지어 생각할때 너무나도 내키지 않아, 최대한 빨리 볼일을 보고는 다시 26분짜리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플랫폼에서 저 멀찍이 고개를 들이미는 기차를 바라보며, 정말 한 순간이라도 빨리 몸을 실으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주변에서 함께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저 중년이 살집에 비해서 추위를 잘 타나 웬 호들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by bluexmas | 2012/12/07 00:07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삼별초 at 2012/12/07 10:32 
시간이 갈수록 변하지 않아서 옛생각이 나는 고향도 있지만 변화의 흐름에 맞춰서 과거의 모습을 찾을수 없는 고향도 있죠

둘다 모든이에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볼수도 없는것 같구요 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12/09 14:08
네 제가 살던 동네도 지금은 너무 바뀌어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Commented by 상지 at 2012/12/07 11:47 
전 애틀랜타가 그런 느낌이에요. 그런데 그 흔적에서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12/09 14:09
그 동네도 좋은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충분히 그렇게 다가올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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