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에서 먹고 있다

의욕이야 넘쳐 장을 봐서 이것저것 해먹고 싶으나 막상 실천에 옮기려면 쉽지 않다. 일단 변변치 않은 솜씨를 비롯해 낯선 환경, 잘 모르는 재료 등등까지 다 포함하고 나면 ‘아 뻘짓거리 관두고 그냥 사먹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욕심을 줄이면 문제-적당한 빵과 콜드컷(햄류), 치즈만으로 얼마든지 끼니 때우기-는 아주 간단해진다. 숙소에는 나도 호기심에 샀다 버린 이케아의 칼 세트가 놓여 있다. 물론 진지하게 칼질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나라의 수도니 수퍼마켓이니 뭐니 종류가 꽤 많을줄 알았는데, 숙소에 물어보고 내가 돌아다니며 찾은 것만 놓고 본다면 잘 모르겠다. 반경 2km 안쪽에 수퍼마켓 체인이 세 군데 있는데, 한 군데에서만 그럭저럭 뭔가 살만하고 그나마도 별 게 없다. 채소는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 들여온게 대부분이고 자국 생산품-딱지를 붙여 놓는다-은 풀죽 한 그릇 제대로 못 얻어먹고 고난과 역경을 좀 헤친 아우라를 풍긴다. 온실에서 재배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래도 맛이 나쁘지는 않다. 특히나 샐러리는 좀 과장을 보태 충격적인 맛이었다.  그 수퍼마켓이라는 것도 규모가 큰 건 아니고 물건도 아주 다양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이게 나라 분위기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기 또한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떻게 생긴 놈을 잡아 어느 부위를 잘라 파는지 모르겠지만 소는 지방이 붙은 게 별로 없다. 경험이나 삼아보겠다고 억지로 오늘 사온 쇠고기는 운동을 엄청 많이 해서 체지방률 3%이하로 몸을 다듬었는지 붉은 고기에 지방이 하나도 없었다. 못 읽지만 대강 짐작해보니 슈니첼을 만들라고 딱지가 붙어 있는데, 군에 있을때 인간 노예 코스프레용 소품이던 롤러로 밀어도 아마 슈니첼해 먹기는 어려울 것이다. 썰어 볶아 먹었는데 턱이 좀 고생했다. 그래도 축산품에 쓸데없는 짓을 안한다고 들어, 사진의 돼지나 오늘 먹은 소, 아침에 녹인 버터에 삶다시피 해서 먹은 계란 모두 비싼게 아님에도 맛이 깨끗했다.

반면 유제품은 여태까지 먹은게 모두 훌륭했다. 특히 버터가 충격적이었는데, 보통 무염버터는 소금이 없으면 느끼하고 닝닝한데 이건 수퍼마켓 싸구려라 발효를 안 한 것 같음에도 굉장히 풍성하고 깊어 소금 없이 덩어리를 씹어 먹어도 맛있었다. 뼈대있는 바다소금 가문인 몰든을 사와서 그 알갱이를 뿌려 먹으니 앉은 자리에서 반 덩어리 정도는 느끼함에 죽는 일 없이 먹겠더라.

하여간 첫 끼니는 그럴싸하게 만들어 먹었지만 마늘도 없이 소금만 쓴 음식이 제대로일리 없어 벌써 내가 만든 음식에 지쳤다. 한편 호기심에 사온 이런저런 것들 가운데 꽤 많은 것들이 준 괴식 수준이라, 진짜 공식 괴식들은 어떨까 벌써 두려움에 떨고 있다. 오늘 한 번 장을 더 봐왔는데 몇 끼니 바깥에서 먹는 걸 감안하면 이걸로 갈 때까지 먹을 수 있겠다 싶다. 글렌드로낙 18년산을 한 병 사와서 틈날때마다 부지런히 마셔대고 있다.

참, 이 동네는 제과제빵 문화가 척박하다는 의견이 많던데 한 군데 찾은 곳은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이것저것, 심지어 봉봉까지 만들어 파는데 일단 케이크는 흐를락말락하는 무스의 질감이 인상적이었고, 빵은 뽀대나 냄새와 달리 깊은 맛은 없었다.

 by bluexmas | 2012/09/19 08:21 | Taste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푸른별출장자 at 2012/09/19 08:27 
이제 하우칼 드시는 겁니까?

북유럽 음식들도 참 삭막하던데 거기서 더 올라간 아이슬랜드라면 좀 막막은 하겠습니다.

화산에 쩌낸다는 룩브라우트도 소개해 주세요. 이야기만 들어 본지라 궁금해서…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9/24 08:52
어휴 그건 별로 도전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퍼에 파는데 사올까하다가 터지면…

화산에 쪄내는 음식도 있는지 몰랐네요;;; 저는 그냥 대부분 제가 재료 사다 해먹어서 밖에서는 고래와 퍼핀만 먹었습니다;;

 Commented at 2012/09/19 08: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2/09/24 08:53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2/09/19 10:43 
다른 유럽국가들 음식에 비해 좀 척박해뵈긴하지만, 나름 좋은 것 찾아내고 즐길거라 믿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9/24 08:53
하하 여기도 케이크-마카롱-패스트리-초콜릿-발효빵 다 하는 빵집밖에 없습니다^^

 Commented by Nobody at 2012/09/19 11:33 
우리나라에 살면서 타국 유제품은 참 부러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9/24 08:53
그래도 여기는 나머지 재료들이 우리나라보다 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at 2012/09/21 08: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2/09/24 08:55

비공개 답글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