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빵문화의 현주소

이번 달 월간 조선 연재 <맛있는 상식>에  “식사빵”에 대해 쓰느라 이런저런 곳에서 업데이트를 좀 했다. 제목이 거창하지만 길게 쓸 필요도 없다. 궁금하신 분들은 기사 참고를 부탁드린다.

(이 사진은 글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1. 문화 전체 또는 생산자의 자아 도취 내지는 과대 평가, 결과: 가격 상승

빵 250g에 한 만 원(10,000)이라면 엄청나게 잘 만들어야 되는데, 부풀기는 그럴싸하게 부풀었으되 발효 풍미는 하나도 안 나는 빵도 꽤 많다. 통밀빵이라는 게 몰트 같은 걸로 낸 색깔과 단맛만 나고 통밀 식감이나 풍미는 거의 없었다.  자아 도취 내지는 자체 과대 평가는 얼마 전 지나가는 이야기로 했지만 최근에 열었던 윈도우 베이커리 컬렉션이라는 것의 모토가 ‘Return of the Artisans’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알고 또 좋아하는 빵집들도 있지만 그 전체를 묶어서 아티잔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베이커리’ 컬렉션이라면 아무리 잘하거나 못하거나 빵 외의 음식들은 빼고 가는 것이 여러번 한 행사라면 맞다. 외국에서 배워왔다고 졸업장은 내미는데 빵은 그런 수준 아닌 곳도 있고. 사람들이 ‘아니, 식사빵이라는 게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가 전부 아니야? 근데 왜 이렇게 비싸?’라는 이야기를 안하게 하려면 맛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주로 ‘사람의 손맛을 사기 때문에 맛있는 빵은 그만큼의 돈을 주고 먹을 가치가 있다’라는 이야기를 해왔는데, 이제 별로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

한편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는 밥이나 다름 없는 “식사빵”이 엄청난 고급 문화인 것처럼 퍼지는 것 또한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몇 빵집들이 기본에 충실한 빵을 만들고 후하게 시식을 벌여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빵을 알리는 건 바람직하지만, 그러한 빵집들의 위치와 가격을 보고 있노라면 이 문화가 결국 어떻게 뿌리를 내릴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니, 이미 그렇게 퍼져 있다.

2. 검증되지 않은 건강 드립-자연 발효종

거듭 말하지만 자연 발효종과 건강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벼라별 데서 그걸 내세워 뭘로 만들었는지조차 모르는 자연 발효종 빵을 판다. 심지어 ‘이스트는 자연 발효종을 대체하는 화학 제재’라는 문구를, 웬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보았다. 진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건강이나 소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그렇다 치고, 오랜 발효종 ‘사육’기간으로 인한 특유의 산도 때문에 자연발효종 빵은 실 수 밖에 없다. 훌륭한 김치의 신맛을 누리면서도 커피며 초콜릿, 요거트 등등의 기호식품에서 신맛을 기피하는 현실에서 자연발효종 빵이 입에 맞을리가 없을텐데? 물론 그렇게 신맛 열심히 나는 빵 또한 거의 먹어본 기억이 없지만… 게다가 건강에 좋은 자연 발효종이라면서 가공버터니 싸구려 가공치즈, 중국 수입산 팥고물 등을 척척 넣어서 빵을 만들면 그게 건강에 좋을 수 있나?

3. 잘못된 지식의 전파

발효종과 같은 맥락이지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 잡아줘도 모자를 판에 빵집이 앞장서서 그걸 퍼뜨린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지만, 빵이 마르는 건 전분의 노화고 기공의 크기와는 상관이 없다.

4. 소비자의 이해 부족

빵집만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도 이해가 부족하고, 맞는 정보가 있어도 잔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본식으로 겉을 허옇게 구운 식빵은 색깔이 나게 구운 것보다 맛이 없다. 요즘은 누룽지 먹기가 힘든데, 누룽지 좋아한다면 그 이유와 똑같다. 그런 얘기 아무리 해봐야 그냥 그런 빵 먹고 맛있다고 한다. 그럼 어쩔 수 없다. 그런 손님들이 깡빠뉴 같은 거 색깔 많이 나 있으면 탔다고 하는 거야 뭐 워낙 오래된 이야기라… 그런 사람들이 빵도 갓 구워서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빈도가 높지 않나?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은 전혀 상관없는데, 어설프거나 잘못 아는데 그걸 검증 및 확인도 안하고 퍼뜨리는 사람들이 가장 문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쫄깃한 걸 정말 좋아하는데, 쫄깃한 거와 질긴 건 전혀 다르다. 크러스트가 바삭해야 할 빵을 덜 구워 질겨지는데 이건 쫄깃하지도 않을 뿐더러 먹기에도 부담스럽다. 만드는 사람도 좋은 빵을 못 먹어 보았는지 이런 빵만 계속해서 구워낸다. 음식 만드는 일을 하되 음식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다. 빵을 만들지만 빵을 싫어하는 경우라면 굳이 그걸 업으로 택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일은 좋아해도 자기 계발하기가 쉽지 않다.

5. 소위 말하는 ‘동네 빵집’의 과대 포장

이 사진 한 장으로 설명을 대체하겠다. 여기를 찾아갔더니 어김없이 ‘프랜차이즈가 동네 빵집 죽인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두 빵집이 내는 빵의 수준이 같았을 때만 가능하다.

사실 구구절절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게, 서양의 밥인 빵이 겉멋만 계속해서 들고 있는 건 사실 우리가 주식인 밥조차 제대로 만들어 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야 그렇다 쳐도 직장인들 많을텐데, 가깝거나 편하다는 이유로 그냥 가는 식당들에서 먹을만한 밥이 얼마나 나오는지 따져보면 안다. 곡물의 특성으로 인해 빵이 밥보다 조리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좋은 밥솥에 좋은 쌀 많아도 정작 밖에 나가서 먹어보면 그냥저냥 넘길만한 것도 찾기 어려운데, 빵까지? 언감생심이다.

 by bluexmas | 2012/06/03 14:09 | Taste | 트랙백 | 덧글(21)

 Commented by Nobody at 2012/06/03 14:18 

좋은 글, 정리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니케 at 2012/06/03 14:43 

5번은 약간 공감가는 게 솔직히 동네 빵집은 맛이 없어요. 제가 집에서

대충 만든 빵보다 맛이 없을 정도면 얼마나 기술이 부족한지 알겠더라고요.

프랜차이즈 빵은 어느 이상의 맛을 유지하니까 집에서 만든

것보다는 맛있고 그러니 당연히 프랜차이즈 빵집을 갈 수 밖에요.

 Commented by 라라 at 2012/06/03 15:02 

재벌딸들 빵집 방송 이해가 안된게 실제 문제가 되는 프랜차이즌 다른 두 군데인데

문득 생각해 보니 그 두곳에서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다 그런 방송을 내게 한 건 아닐가 싶더군요

 Commented by 애쉬 at 2012/06/03 15:35 

밥 보자면 정말 ‘엄감생심’이 맞네요 ㅎㅎㅎㅎ(이건 웃지만 웃는게 아니랍니다)

그래도 빵은… 선택의 폭이 좀 넓어져서 발품좀 팔면 그닥 입에 맞는 건 구할 수 있어서 나아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샤워브레드가…왜 시큼한게 없나했더니 -ㅂ- 신 맛은 싫어들 하셔서 그랫군요;;;

똠얌꿍 드시고 ‘매운 주제에 시큼해서 기분나쁘다’는 소감 생각나네요 ㅎㅎㅎ 그분 김치찌게는 잘 드시는데 ㅎㅎㅎ

이해가는 가격으로 맛난 빵 먹을 수 있게되면 참 좋겠습니다.

아울러 어렵게 재배된 우리밀… 식사빵으로 잘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좀 대중화 되었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푸른별출장자 at 2012/06/03 15:45 

맥다나 나 KFC 프랜차이즈 빵집이 흥할수 있었던 것은

그가격에 품질과 맛의 유지가 가능해서였던것이죠.

이 부분은 진짜 동네 빵집들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대충 만들어 대충 팔고 대충 비슷하면 사먹는 그런 환경에서

그나마 꾸준하게 일관된 맛을 유지하고 위생이나 품질이 보장되는 프랜차이즈 빵들을

넘어서는 동네 빵집들이 나와야 하는데…

소비자나 공급자들이나 그 면에서 좀…

 Commented by petal ♧ at 2012/06/03 15:50 

아아 이건 공감쏴야하는글입니다 쐏
 Commented by 이녀니 at 2012/06/03 17:41 

공장+기술력 vs 수제+기술력인걸요… 당연히 프랜차이즈가 우세할 수 밖에요…
 Commented by 빛의제일 at 2012/06/03 18:17 

마지막 문단에서 밥과 빵을 언급하신 내용이 와닿습니다.
 Commented by sui at 2012/06/03 20:25 

개인적으로 4번 격하게 공감합니다.;
 Commented by 은화령선 at 2012/06/03 20:37 

우리동네 빵집은 맛있어서 다행이다…
 Commented by 늄늄시아 at 2012/06/03 21:48 

4번에서 완전공감합니다. 최상의 맛이 나도록 구웠는데, 소비자들 중에서는 “너무 탔다”, “쫄깃거리지가 않아” 등등 컴플레인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죠.

5번은… 과발효된 생지로 구워파는데 아직 성업중인 빵집이..파바에서 바게트 사러 갔다가 다 떨어져서 동네빵집 가서 샀다가 경악했습니다.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2/06/04 00:25 

본문에는 5번 일부 빼고 모두 공감합니다. 동네 빵집과 프렌차이즈가 빵 자체만으로 경쟁하는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덧글들은 별로 공감이 안 가는군요. 덧글들, 저, 둘 중 하나는 이해력 부족인가봅니다. 저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

그나저나 저런 내용으로 월간 조선에 쓰셨다는건가요. 연재가 계속될 지 걱정됩니다.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2/06/04 00:47 

저도 빵 맛보는 미각이 생긴건지, 그냥 근처 빵집들 빵이 형편없는건지 몰라도..슬슬 맛없는 빵은 좀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후자일듯;;
 Commented by 치다 at 2012/06/04 01:31 

라면 글 이후로 한동안(잠시간?)글이 없으셔서 좀 걱정했습니다.

괴로운 것은 몇명 유명한 빵집 빵이 그렇게 각별난 맛이 아닌데 비싸다는 것이지요…먹어보고 왕짜증 날때 많습니다……비싸고 맛없고. 루이비똥샀는데 메이드인 차이나라고 써있을때 느낌?

여러가지 문제점 지적 하신것에도 깊은 동감입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손바닥 만한 치아바타 하나에 3천원 돈인데 “식사”빵이 되기엔 너무 야속한감이 있지요. 식감도 이게 식사빵인지 식사공기인지 밀가루 묻힌 공기같은 느낌인데 말이죠ㅋ

그나마 조금 저렴하고 쉽게 접근 할수 있는게 장점이던 프랜차이즈들도 꽤 가격이 올랐으니…

누구를 위한 빵의 르네상스인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유령회원 at 2012/06/04 21:19 

우리동네엔 동네빵집이 없고 다 프렌차이즈네요.

이지바이는 가격은 착한데 맛이 안착하고 파바는 가격은 이지바이보다 비싸지만 맛은 착실하고…

 Commented by 광대 at 2012/06/05 08:12 

좀 맛이 있다 싶으면 엄청비싸고… 걍 빵집에서 먹으면 맛이없고…

ㅜㅜ

 Commented by thinking at 2012/06/05 08:42 

5번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집 근처 제가 좋아하는 동네 빵집은 프렌차이즈와 달리 식빵은 촉촉하게 다른 빵은 내용물을 그득하게 넣고 정말 맛있게 굽는데.. 장사잘되요! 뭐 맛집이라 소문난 그런 곳도 아니고 그냥 일반 빵집인데 말이죠..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 근처에 프렌차이즈만 3곳, 동네 빵집 1곳, 컵케익 전문점 1곳, 케이크 프렌차이즈 1곳, 도넛 전문 프렌차이즈 1곳 이렇게 있었는데 도넛 프렌차이즈는 망해도 얘는 장사 잘해고 있거든요ㅋㅋㅋㅋ

사실 맛있으면 장사가 안될 리가 없어요~ㅅ~

그리고 지금 제가 영국에 있는데..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식사 빵이 너무 고급화 되어있는건 여기와서 확실히 느껴져요 ;ㅅ; 식사빵이 우리나라처럼 엄청 비싸지도 않은데 맛있거든요 ;ㅅ;(제대로 만드는 빵집 가서 사면 좀 비싸긴 하겠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 말이죠..) 여기와서 샌드위치는 빵의 맛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12/06/05 11:51 

4번…. 평양냉면 잘 하는 집 기껏 찾아가놓고는 “이거 왜 이렇게 싱거워! 이딴 집을 누가 추천했어!”라고 ㅈㄹ해대는 판인데요 뭐 -_-;
 Commented by 몬스터 at 2012/06/05 16:11 

영국에서 한국 오늘 길에 공항에서 EAT라는 체인을 발견하고 철판에 납작하게 눌러서 구워주는 몬테 크리스토 샌드위치를 먹어봤는데,

아직도 그 맛이 기억이 납니다. ㅠㅠ 그 때 배만 더 고팠어도..아오.

 Commented by chobomage at 2012/06/05 16:38 

가격이 너무 비싸단 점에서 동감.. 근데 요즘 가격이 싼 식품이 없다는거. 다 비싸 -_-
 Commented by kykisk at 2012/06/15 16:52 

5번 정말 공감인게… 그동네에서 정말 맛있게잘하는 빵집은 동네 입소문 퍼져서 프렌차이즈 아무리 들이밀어도 망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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