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손님을 배웅하는 날,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어 경동시장에 들렀다. 냉장고가 텅 빈 상태였다. 김칫거리도 사야만 했다. 청과물시장 초입에 옥수수를 쪄서 파는 집들이 몇 있다. 평소에는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쪄서 파는 옥수수를 사서 먹어본 기억이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 특유의 달착지근함이 싫기도 하지만, 옥수수 쯤이냐 내가 얼마든지 쪄 먹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지나쳐왔던 옥수수가, 장을 거의 다 보고 나오는 길에 눈에 들어왔다. 그 옥수수에 대해 손님과 나누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멈춰섰다. 물어보니 세 개에 천원이란다. 이렇게 쌀 수가. 바다를 건너는 비행기가 바리바리 음식을 싸가는 소풍길은 아니지만 뭐 그래도 간식으로 나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쪄서 파는 게 못내 내키지는 않았지만 진작에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실 진작에 준비를 할 겨를도 전혀 없기는 했다. 이왕 사는 것, 찌지 않은 것도 사서 좀 먹어볼까 생각하고 이천원 어치만 더 싸달라고 청했다. 내가 고른 건 알갱이 색깔이 검은색부터 누른색까지 다양한 뭐 그런 종류였고 그 옆의 건 옥색이라고 말할 수 있는 뭐 그런 한 가지 색깔이었다. 굳이 장을 이렇게 보고 있는 이유가 나름 공부여서 이 두 옥수수의 차이가 뭐냐고 물어보니 주인 아저씨 왈, 하나는 노지고 뭐 또 하나는 어쩌구…하는데 그걸 건성으로 들으며 아저씨 등 뒤에서 옥수수를 담는 아주머니를 보니 상자를 칼로 뜯고 있다. <Frozen Corn, China> 뭐 대강 그렇게 쓰여 있다. 아, 그래서 이렇게 말도 안되게 싼 것이로군. 중국산이니 안 사겠다고 하려다가, 그래봐야 삼천원인데 싶어 그냥 사기로 마음 먹는다. 오천원짜리를 내밀었는데 삼천원을 거슬러준다. 아주머니의 ‘삼천원’을 거스름돈 삼천원 내어주라는 이야기로 들은 아저씨의 실수다. 속으로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다 받고 얼른 돌아선다. 그 ‘노지’는 중국 어느 동네 노지인가요? 국산은 국산이라고 표기하면서 중국산은 은근 슬쩍 넘어가니까 나도 그냥 은근 슬쩍,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옥수수를 사기는 했지만 중국산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손님이 드시지는 않기를 바래서 열심히 권하지 않았고 손님도 다행히 가져가지 않으셨다. 다행이었다. 대신 공항 주차장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면서 내가 우적우적 먹었는데 정말 그냥 달착지근하기만 했다. 세 개 중 한 개를 먹고 나머지는 경비 아저씨에게 드렸다. 집에 와서 봉지를 풀어보니 정말 옥수수가 얼어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소 먹인다고 ‘cow corn’ 또는 ‘feed corn’이라고 부른다던데 정말 그런 걸 빼다 파는 건 아닌가 싶었다. 어차피 쌓인 지방 마블링으로 화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나머지는 내가 삶아서 우적우적 열심히 먹었다. 맨해튼의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손님 모르게 할 이야기를 ‘Don’t eat the corn!’이라고 운을 떼어 주의를 주는데, 그게 그냥 우리말 표현 ‘옥수수 먹지마!’로 굳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옥수수를 그냥 일단 다 먹었다. 하지만 잘 알고는 있다. 어떤 옥수수는 먹으면 안된다. 반드시 먹어야 할 경우에는 그야말로 ‘옥수수 먹지마’를 한 번 외친 다음 꼭 같이 먹어야만 할 사람들을 모아 조용히 먹어야 한다. 이를테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는 대나무밭 같은 곳에서. 대나무밭 같은 대나무밭도 찾기가 어려워졌으니 대나무밭 같은 사람은 또 얼마나 찾기 어려운지. 모두가 그런 사람을 찾지만 누구도 그런 사람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애초에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나마 그 불가능에 도전이라도 했던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고통의 파도를 그대로 흡수하고도 잠잠하기란 망망대해에게도 실로 난감한 일은 아닌지. 하물며 출렁이기는커녕 머무르지도 못하는 사람이.

 by bluexmas | 2012/03/21 01:35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조나쓰 at 2012/03/21 09:11 
마블링에서 빵 터졌습니다만, 이어지는 대나무밭 이야기는 쓸쓸하네요.

남 얘기를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어쩌면 자기만 아는 대나무밭을 따로 꿍쳐놓았을는지도요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3/26 10:29
아 그러면 좋겠죠… 대나무밭은 돌고 돌면 나중엔 어디에서 터지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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