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자폭이 최선

이제 사십줄을 바라보는 무명의 프리랜서 박철수(가명)은 책을 쓰고 싶다. 처음 책을 낼 때는 이걸 웬만큼 팔고 다음 책도 쓰자고 기쁨에 겨워 온갖 공상을 해댔다. 공상은 결국 공상에 그쳐, 박철수는 그 책을 못 판 것은 물론 다음 책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책은 그 자체가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골치를 좀 썩였다. 물론 초판도 다 못 판 건 글 써서 벌어먹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참 민망한 일이기는 한데, 그 때문에 선인세를 뺀 초판 인세의 나머지를 1년 있다가 받기로 계약된 건 조금 과장을 포함해 독소조항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초판 인세는 책이 나옴과 동시에 준다는 건 정말 나중에서야 알았다. 하긴, 많이 받아봐야 인세는 책의 10%, 그리고 내 책은 2,000권을 찍었다고 들었다. 계산이 금방 나온다. 보통 선인세가 100만원이니 그 나머지를 1년으로 나누면 한 달에는? 그것도 계산이 금방 나온다. 거의 알바비 수준. 심지어 내 책에는 사진도 표지 빼고는 다 내것이라 거기에도 돈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그 책 자체에는 굉장히 만족한다. 그러나 책을 잘 만들어주는 것과 돈을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문제는 그 나머지 돈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1년을 조금 넘겨 연락을 했을때 들은 대답이 ‘형편이 어려우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였다. 결국 참고 참아왔던 싫은 소리(‘딱 예상했던 대답을 주시네요. 미안하다는 얘기 마시고 그냥 빠른 시일 내에 입급해주세요. 그 정도 금액이라면 한 달에 10만원 조금 넘게만 주었어도 1년이면 남을 돈입니다’)를 한 바가지 쏟아내고 또 시간이 좀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경우 돈을 받아놓고도 속이 쓰리다. 왜 이 돈을 가지고 이런 난리를 쳐야하며, 책 잘 만들어놓고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생각이 들어서다.

최근 나는 나의 가치를 인정해준 어느 곳에 자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게 자폭인 이유는 가치 좀 알아달라고 이리저리 원고며 책이며 보내고 연락 없는 곳이 십중팔구인 마당-그나마 나머지 한 둘도 거절?ㅜㅠㅠ-에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못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당연히 여기에 구구절절 늘어놓을 것이 아니니까 접고, 그냥 이런 이야기나 할까 한다. 뭐 한 대학 1,2학년때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이성을 만난다고 하자. 서로 마음에 들면 소위 말하는 ‘밀당’을 하게 된다(또는 한다고 한다. 나는 그런 거 잘 못한다). 근데 이 밀당이라는 것이 진짜 전략적인 움직임일 수도 있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그냥 현실의 여건이 맞지 않아서 생기는 상황이 그렇게 인식되는 경우일 수도 있다. 특히나 나 갓 대학 다닐때처럼 핸드폰도 없고 집전화도 마루에 덜렁 하나 있는 경우라면 마음에 들어도 이래저래 메시지를 보내기 어려울 수가 있었다. 요즘도 학보 나오나? 나때는 학보를 보내는 게 그런 관심의 표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웃기니 원칙을 깨고 초성체로 웃어보자. ㅋㅋ 학보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긴 학보 주고받다 결혼한 사람들도 있기는 있으니 이렇게 웃으면 안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세상이 다르다. 원하면 카톡이든 뭐든 그냥 ‘ㅋㅋ’만 날려도 메시지로 인식하는 세상이 되었다. 의사는 어떻게든 빨리 전달할 수 있으며 그만큼 사람들의 인내심은 약해졌다. 나도 그런 측면에서 인내심이 약한 인간이 되었으며, 거기에 대학교 1, 2학년이 아니다보니 연애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밀당 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다. 기다리기 싫다는 이야기다. 이게 그런 거 믿지도 않는다. 둘이 너무 좋아서 보자마자 누구 표현처럼 그냥 “엎어져도” 현실에 치어 결국 개박살 나는 연애를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계속 생각한다. 어디에서 또 자폭해야 될지를. 기다리면 물론 달라질 수 있다. 달라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기다릴 수 없다. 없는 게 아니라 못한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다림의 덩어리다. 덜기는 어렵고 더하기는 무진장 쉽다. 어깨가 휜다. 때로는 자폭해서 나의 존재를 없애버리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자폭해버린다. 이래도 괴롭고 저래도 괴로울 거라면, 그냥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는 것 뿐이다. 그게 공교롭게도 자폭일 뿐이다.

 by bluexmas | 2012/02/03 02:26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12/02/03 09:19 
조만간 술한잔 하시죠…. – 김철수 올림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04 01:24
네 그래야지요… 너무 추워서 동사할까봐 먹기 두렵습니다.

 Commented by 조나쓰 at 2012/02/03 09:45 
그 사람들도 힘이 드니까 조금이라도 아껴 보겠다고 밀당을 시도한 걸까요?

어떠한들, 갑갑한 상황이기는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조만간 멋진 제안이 갑툭튀해서 박철수님 품에 안기기를 기원하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04 01:25
아뇨 뭐 밀당이라기보다 해바라기하는 상황이랄까요… 다소 복잡하고 섣불리 언급할 상황이 아닌데 이모저모 좀 아쉽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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