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번호 잡담

1. 누군가를 만난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 들어준다. 한 두 번쯤 만나 그렇게 해 준다. 그리고는 두 번째 헤어질때, 웃으면서 말해준다. “^^ 정말 그렇게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경험이 일천한데 그 경험이 엄청난 것인 듯 생각하는 사람일 수록 좋다. 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왜 말하냐.

2. 예전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입장거부를 당한 적이 있어 오늘은 뛰어서까지 시간에 맞춰 <코안도르 양과자점>을 보러갔다. 순전히 직업적인 의무에서였노라고 말하겠다. 솔직히 그래야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감성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했다. 시간이 나면 자세히 쓰겠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3. 사실 그 모든 열고 닫기는 대부분 계획과 의도에 의한 것이다. 나를 까서 속살을 전부 보여준다고 해서 100%의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건 세상에 없다. “무조건적인 배려” 따위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듯이.

4. 아주 갑자기 와인이 마시고 싶어져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한 병을 사들고 왔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무엇인가를 계획했는데 두 번 모두 어그러졌다. 그래서 개점 휴업상태. 요즘 음식을 너무 안 해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에 음식 만들어 먹는 패턴을 다시 부활시켜야 되겠다.

5. 어제는 홍대 골목에서 아주 웃기는 선전문구를 걸어놓은 레스토랑을 봤는데…

6. 100% 이해라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90%정도가 가능하다면 그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가끔 그런 상황이벌어진다. 소름이 끼친다. 누군가는 나에게 ‘잘난거 없는데 잘나서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인간이다’라고 비난했다. 한마디로 자뻑이라는 얘긴데.

7. 여대생 사이에 둘러싸이고 싶어서 일부러 아트하우스 모모에 간 거다. 복학하고 이대 축제에 놀러갔었다. 친구놈의 사촌이 오라고 그랬다고. 그냥 엉거주춤하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운동장에서 군무하는 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자봉단인지 지킴이인지 하는 조끼입은 언니들이 오셔서 “고대생 성폭행 사건 이후로 축제에 온 남학생들의 사진을 찍습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사진을 찍어댔다. 나는 너무 열받아서 ‘지금 나갈테니 내 사진은 찍지 마라 기분 나쁘다’라고 말했지만 이미 찍힌 뒤였다. 그대로 캠퍼스를 나섰다. 솔직히 그런 걸로 의미 따위 따지고 싶지 않은데, 우리 어머니도 이대 나오셨다. 나는 손님으로 찾아간 거지 잠재적인 용의자로 찾아간 게 아니다. 십년도 더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화가 나 있다.

8. 대학 2학년때 하이텔로 컴퓨터통신을 시작했는데, 이대동에는 남학생들도 많았다. 당연히 많겠지. 나는 아주 가끔 가서 게시판을 보는 정도였는데, 그런 나도 알만큼 게시판을 주름 잡는 이대생들이 좀 있었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누군가가 신세한탄을 하며 ‘원래 000을 하려 했는데 엄마가 **하면 안되냐고 해서 그냥 여기 왔다’라는 글은 기억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타협과 그때 희생을 했던 사람들, 지금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까? 정말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서 그렇게 원하는 길을 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9. 나의 경우는, 잠재의식과 적절히 타협하는 길로 가고 있었다. 스스로를 의식하기도 전에 형성되었던 삶의 길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고나 할까. 현재의 상황에 불만이 거의 없는 이유는, 지금의 내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서른 하나 이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서른 하나의 나로 쭉 살지 않게 된 것만 해도 솔직히 감사하다. 자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이었더라면.

10. 술 맛있는데? 세일하는 거 사서 그런 거겠지.

 by bluexmas | 2011/08/11 01:04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cleo at 2011/08/11 01:42 
1번의 처음 두 문장을 읽고 ‘드디어 블루마스님께도 애인이 생긴거구나!!’ 기뻐했더니만 이게 뭐에요?(한 번만 더 만나보면 진짜 대단한 사람인줄 알 수 있을텐데 아쉽군요-.-)

프로방스..

여기는 가는 곳마다 와이너리 천지던데 블루마스님 오시면 너무너무 좋아하실 듯!^^

(코트 뒤 론, 지공다스, 샤토뇌프 뒤 파프.. 와인에 대해 무식한 저조차도 알아보는..)

몇모금 맛만 봤을 뿐인데 헤롱거리며 ‘취중관광’ 했다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8/11 01:44
믿거나 말거나 휴가도 못가고 있습니다… 전환점을 찾는 여름입니다. 곧 나아지겠죠.

 Commented by settler at 2011/08/11 05:27 
아트하우스 모모 한번도 못가봤네요 씨네큐브도 하이퍼텍나다도 모두 사라지고 그거 하나 남았나봐요 에효

잘 듣고 잘 말하는 대화가 생각보다 어렵고 드물단 생각 저도 합니다 가끔은 절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게 저절로는 안되더라구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8/17 12:17
모모 나쁘지는 않던데요. 작은 극장치고는 좌석이 이성적이더라구요.

문제는 들으려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1/08/11 09:34 
더운데 고생.

허락없이 사진찍는 것도 범죄.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8/17 12:17
참 어이없는 일이었지요…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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