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너덜너덜

혀 아랫쪽이 온통 너덜너덜하다. 혀를 대기가 무섭다. 최종병기 알보칠을 소환하고 싶지만 아마도 나는 약이 상처를 다스리기 전에 고통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무서워서 차마 엄두를 못낸다. 한방에 큰 고통을 맛보고 회복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아 지연시킬 것인가… 후자를 택하는 건 용기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나 돌아보면 너덜너덜한 내 삶의 또 다른 시도는 일단 6개월만에 또 너덜너덜하게 막을 내렸다.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오늘은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출근했다. 하루 종일 몹시 착잡한 기분이 들기는 했는데 그걸 음미하면서 우울하기에는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마치 무심하기라도 한 듯 하루를 그냥 그렇게 보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따지고 보면 딱히 새로울 건 없다. 고통을 고통으로 대체하는 형국 아닌가.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슬프다면 교통사고를 징하게 내서 덮어버리면 되는 뭐 그런 격인가? 어쨌든 또 다른 많은 고통들이 이 인생의 릴레이 트랙 위에서 바톤을 거머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아아, 손에 땀이 많이 나면 안돼. 바톤을 놓치면 끝장이야. 인생 한 번 징하게 타 봐야지.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간식처럼 늦은 오후에 치킨을 먹었다. 그건 정말 두 번 죽은 치킨이었다.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 곳의 생맥주라는 것이 뻔할 것 같아 병맥주를 시켰는데 그것마저도 뻔했다. 오오 우리는 뻔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그걸 재확인하는 것마저 뻔했다. 돈은 쓸 수 있지만 말을 계속 하는 건 참 힘들었다. 동사무소 헬스클럽 회원자격을 갱신하려고 빨리 끝을 내고 집에 돌아왔다가 동사무소로 향했다. 5분 전에 도착했는데 10분 전에 컴퓨터를 끄고 마감을 준비하니 내일 오라고 했다. 이래서 공무원이 좋다고 말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실 딱히 쉰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일어나는 건 상관없지만 밖에 나갈 필요는 없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했다. 간만에 하루 종일 집에 있고 싶다. 지난 기억을 떠올려 보는 거다. 그 너덜너덜한 기억들을. 돌아보면 기억이라는 건 언제나 너덜너덜한 것 같다. 내 기억만 그런지 아니면 모두들 그렇게 너덜너덜한 걸 가지고 사는지, 그것도 아니면 ‘ㄱ’ 다음엔 ‘ㄴ’이라 기억이 너덜너덜한 건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몇 단계만 더 이런 너덜너덜한 단계를 거친다면 그때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다 상관없지만 3번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말은 아름다우니까.

저녁을 먹으러 갔더니 정미소는 손짜장집으로 변해 있었고, 그럴싸만 해 보이던 카페 하나는 더 꼴보기 싫은 불닭인가 뭔가 파는 집으로, 그 건너편의 뭘 파는지 절대 알 수 없었던 집 또한 문을 닫은 채였다. 새로운 가게가 생길 때마다 얼마나 오래갈까 짐작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요즘 또 이런저런 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데, 어째 1년을 넘길 것 같은 집은 내 눈에 하나도 없었다. 진짜 누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가게를 열면 장사가 될 것이라고 권해주는지 난 그게 정말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 두서없는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한다. 아 요즘 나는 정말 대미를 꾸준히 찾는 추센데 큰남자가 될 것 같아서 그런가… 누군가 나더러 ‘혼자 사는데 아침을 먹고 다닌다니 대단하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진짜 속으로 미친 듯이 웃었다. 세상에 정말 헤치고 나가기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침에 밥 먹는 일로 사람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되는 거냐. 난 정말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아침밥은 꼭 먹는다. 아침을 굶는 건 정확하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일 열심히 하는 사람’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건 그냥 의지박약의 근거다. 한 시간 전에 일어나면 머리감고 아침 먹고 드라이하고 커피도 내려 마시고 설겆이까지 하고 출근할 수 있다. 나는 부지런해서 아침 챙겨 먹지 않는다. 그저 밥이니까 먹을 뿐이다. 먹고 다닌다고 자랑할 건덕지가 전혀 없다는 의미다. 세상에 누가 ‘아 나는 아침에 똥을 싸’라고 자랑삼아 말하던가? 나는 그 둘을 같은 맥락으로 본다. 아, 오히려 후자가 더 어려울 때도 있기는 있지…

 by bluexmas | 2011/06/29 00:00 | Life | 트랙백 | 덧글(15)

 Commented by 별빛사랑 at 2011/06/29 00:43 
알보칠 소환하면 바로 다운된다에 한표입니다;

저도 어지간히 아퍼도 소환 안하는 그 분… 잘못 소환해다가는 HP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질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30 20:31
네 그건 정말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이지요…ㅠㅠ

 Commented by cleo at 2011/06/29 08:50 
웃기는 이야기는 아닌데..

너무 재밌게 쓰셔서 혼자서 쿡. 웃었네요.

(갈수록 글을 맛깔나게 쓰시는 듯..)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30 20:31
웃자고 썼는데요^^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Commented by sasac at 2011/06/29 09:05 
네번째 문단- 저도 3번이었으면 좋겠숩니다.

마지막 문단의 마지막 문장-후자가 더 어려워요. 특히 여자에게는-.-.

웃으면 안될것 같아서 정색을 하고 앉아서 읽다가 커피 쏟을 뻔 했습니다..

은근히 귀여우십니다.

 Commented by cleo at 2011/06/29 11:38
누구신가.. 했더니…

자작부인님 안녕하세요?

(이제 블루마스님 블로그 망하는 건 시간 문제군 ㅋㅋ)

그리고.

실제로 보면 아주 ‘노골적으로’ 귀여우십니다^^

아닌가? -.-

 Commented by sasac at 2011/06/29 12:56
아니.. 여보세요..

남의 작업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방해해도 되는겁니까?

근데 뉘신지요?

-먼…. 산-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30 20:32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얘기까지 하려다 일단 참았지요;

원래 웃자고 쓴 글 맞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30 20:32
근데 두 분 참으로 정겨워 보입니다-_-

 Commented by SF_GIRL at 2011/06/30 04:04 
이야기가 복잡한 소녀만화에서 줄거리가 정리 안되면 기숙사에 불을 내는 거랑 비슷한 건가요?

구내염은 그 자체로도 괴롭지만 피곤함의 징후라 휴식을 취하라는 신호인 것 같아요. 무슨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휴식의 계기가 되었으면.

음 그리고 전직 공무원 입장에서 한마디 변명하자면, 그렇게 칼퇴근하는 건 대민 업무 보는 공무원에 한합니다. 사실 그 분들이 공무원 일반의 인상을 결정할 수 밖에 없겠지만서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30 20:33
네 불이라도 싸질러야지요; 저는 정말 구내염이 너무 자주 생겨셔요. 휴식은… 일단 10일이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SF girl님도 야근 장난 아닌 것 같던데, 건강 챙기셨으면 해요.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농담 삼아 한 거에요. 개인적으로는 긴장 없는 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공무원이셨는데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Commented by 루아 at 2011/06/30 21:56 
아아 알보칠…

하다보면 즐기는 경지에도 다다른답니다. 수련에 임하시 (엉?)

하기 전에 강력한 마우스 워시 – 리스터린 같은 거 – 로 소독하면 별로 안아파요 ^ㅁ^ 그대신 소독할때 아프죠 으하하하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02 10:54
음 알보칠로 입을 헹궈야 할까요;;; 리스터린=액체 파스.

 Commented by 파고듦 at 2011/07/03 19:25 
당신이 미친듯이 웃는게 보고싶네요 ㅋㅋㅋ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03 19:36
자주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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