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치명적인 실수

지난 주 월요일에 <트루맛쇼>를 보았다. 기대를 가지고 본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지 간에 나는 방송에 나오는 음식들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잘못되었고 그래서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종의 직업적인 의무감으로 보았다.

기대했던 것처럼 내용 그 자체에는 딱히 놀랄 구석이 없었다. 오히려 모 “파워 블로거”의 출연이 일종의 깜짝쇼였다. 내 블로그에서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이디든 실명이든 말하지 않겠다. 그럴 가치가 없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하나 있다. 애호가의 권위가 비평가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떠한 식으로든 사물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문제는 그 평가를 뒷받침하는 권위다. 사실 권위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권위적이기 때문이다. 그냥 배경지식이라고 해 두자. 평가를 믿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애호가로서 꾸준히 그리고 많이 접한다면 배경지식을 얻게 될 확률도 높아진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100% 배경지식을 얻을 수는 없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소위 말하는 ‘비평’ 또는 ‘평론’을 위해서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그 배경지식 쌓기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거기에 표현을 위한 능력도 필요하다. 이해하는 것과 그걸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반을 수천 수만장씩 가지고 있다고 해도 특정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나 글로 설명해달라고 하면 못할 수도 있다. 다른 영역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건 좋아해서 많이 듣고 사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연습이 필요하다.

맛을 평가하는 데 있어 이중잣대가 만연한다. 첫 번째는 소심함이다. 평가를 꺼린다. ‘입맛은 주관적이니까’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로 작용한다. 입맛이 주관적이라는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물론 아닐 가능성도 있다. 해석의 문제는 주관이지만 감각 자체의 문제는 객관 또는 과학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평가라는 건 어차피 주관의 영역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평가한다. 오늘 산 옷이 좋고, 어제 읽은 책이 재미없다. 평가는 일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맛에 대해서만 꺼리는 분위기를 종종 느낀다. 맛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두려워한다. ‘밥상머리에서 음식놓고 불평하지 말라’는 가정교육 때문일까? 영화가 재미없고 신발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보다 어렵게 꺼내는 듯한 인상을 자주 받는다.

문제는 사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평가가 아니다. 근거와 표현이다. 음식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이다. 조리는 상태의 변화이고, 그 변화에는 이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과학이기 때문이다. 모르면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배경지식은 권위라고 했다. 권위에 기대지 않은 평가 또한 권위가 없을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무모함에 가까운 용감함이다. 그도 아니라면 자아정체성의 혼동이다. 순수한 정보와 평가는 다르다. 가능한 많은 음식점에 다녀 김치부터 고기 사이에 있는 모든 반찬의 사진을 클로즈업으로 찍고 온갖 인테리어와 메뉴판을 찍는 건 정보의 전달이다. 그것도 나름 유용하다.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불완전하나마 예측할 근거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블로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의 양이나 전달 능력이 평가나 그 능력으로 자동 치환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기대 평가를 내리는 건 잘못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게 먹힌다. 더 슬프다.

트루맛쇼는 “전문가”의 목소리를 빌었다. 모두 나름의 역할이 있었다. 한 사람만 빼고. 연구없는 수집은 그야말로 수집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권위라고 판단하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착각하고 목소리를 빈 건 트루맛쇼의 치명적인 실수다. 위기를 감수하고 모험을 했고, 그 시도에 갈채를 보내지만 약점도 자초했다. ‘음식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힘을 실어주는 차원에서라도 꼭 한 번 보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김이 새버렸다. 어차피 끝도 없는 이야기니 여기에서 일단 끊겠다. “1% 가능성 위해 3년 매달렸다”는데 정말 진심으로 안타깝다.

 by bluexmas | 2011/06/15 13:46 | Taste | 트랙백 | 덧글(11)

 Commented by 샤이 at 2011/06/15 14:34 
건다운을 말씀하시나 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는데(한 가지 흠)

훌륭한 글로 정확히 짚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16 00:53
아 네 그런 분이 있나요 진짜로?

 Commented by position at 2011/06/15 18:58 
건XX 말씀인가본데 그사람이라면 그나마 괜찮은 축 아닌가요?

 Commented by korjaeho at 2011/06/15 20:15
건XX 얼마전에 이글루스에서도 화제가 된 그분 아닌가요?

사진 못찍게 했다고 깽판쳤다는 글이 아고라에 올라온…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16 00:53
의견 조정은 두 분이 알아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Commented at 2011/06/15 20: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16 00:53
아 그런가요? 그 부분은 몰랐는데… 원래 좋아하는 분 아닌데 그래도 거기에서 한 얘기에는 공감했습니다.

 Commented by SF_GIRL at 2011/06/16 00:27 
너무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그 권위를 부여하는 대중의 수준이 딱 그만큼이라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말을 하는 저도 외식 전엔 열심히 옐프 커멘트를 뒤지지만, 거기에 권위씩이나 부여하는가 아니면 도움이 되는 정보의 일부 정도로 생각하는가 하는 건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이 결정하니깐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16 00:54
네 영화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수준이 이 정도니까 딱 맞는 것만 제공하는 셈이죠.

 Commented at 2011/06/16 22: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6/19 00:43
네 전부 본인들 손해하는 사실을 자각 못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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