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대한 연쇄 화풀이

점심을 먹고 우체국에 갔다. 염창동 우체국은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다. 그러므로 내일 나가는 길에 부치면 사실 된다. 그러나 성질이 급해서 하루를 못 기다리는 사람이 나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야 되는 것처럼, 써서 보내야 할 게 있으면 써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한산했다. 지난 주에는 다섯시 쯤 갔는데, 우표 한 장을 사기 위해 15분을 기다렸다. 창구가 둘인가 밖에 없었다. 자동처리기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창구 직원 아주머니에게 말려 등기로 보냈다. 그냥 우표 한 장 붙였어도 다음날 들어갔을 것이다. 그게 내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었는데, 뽑아낸 딱지를 붙이니 왠지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우표를 원했다. 화룡점정이라고 했는데, 안경을 씌운 꼴이었다. 적어도 보내는 내 입장에서는 반드시 우표여야만 했다. 사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

딱히 지친 건 아니었는데 집에 들어오니 무기력해져서 다섯 시 넘어서까지 잤다. 대부분 인정하지 않겠지만, 화풀이의 메카니즘 같은 것이 있다. 만만한 상대 easy target에게 때로 출처도 모르는 화를 쌓아두었다가 내는 것이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아마 이걸 예로 내밀면 될 것이다. 이건 정말 최대한 막아보려고 해도 안 될때가 있다. 나같이 모자란 인간만 그런가… 하여간, 회사에서는 부하직원이 늘 만만하고 학교에서는 학생이 만만했지만 이제는 아닌 추세로 접어들고 있으며, 군대에서는 후임병이… 어쨌든 이러한 메카니즘이 있는데 이건 세상만사를 겪다보면 쌓이는 더러운 것들이 쌓이다 못해 터져나오는 뭐 그런 것인데, 기다림에 대한 화풀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나 뭐 기타 등등의 것들을 기다리다가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 또 만만한 상대를 찾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다. 밥이나 술을 사주겠다거나 딱 어울리는 사람을 아는데 곧 소개시켜주겠다거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어요’라는 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건 “언제”가 정말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도 일종의 기다림에 대한 연쇄 화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달인가 누군가가 마감이 끝나면 밥을 같이 먹자고 이야기했는데,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80% 정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정말 벌어지지 않았다. 약 40일 전의 일이다. 그 마감도 지났고, 이번 마감도 지났다. 그러나 정말 벌어지지 않았다. 그냥 그도 무엇 또는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 화풀이를 한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것’을 기다려야만 하는 삶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 자체가 싫다. “불길한 예감은 늘 사실”이 되고 기다려서 얻는 결과가 좋았던 기억은 갈수록 줄어든다. 그냥 모두들 기다리다가 지쳐 그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에게 방사하려고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들고 또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든다. 모두들 무엇 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돌고 돌다 보면 왜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게 될 때도 있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게 “언제” 밥을 먹자고 했을 것이다. 며칠 지나면 같이는커녕 나 혼자 내 밥도 못 차려먹는 시기가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모두 때때로 벌어지는, 죽음과 한없이 비슷해 보이는  순간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을 아무리 많이 맞이해도 실전 상황에서는 정신 못차릴 것이다. 실전이니까.

정신을 좀 차려 10km를 달렸다. 토요일 전에는 마지막 장거리인 셈이다. 그날그날 다리 상태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오늘은 ‘비’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밥을 먹고 책을 읽다가 미루고 미뤄왔던 아이스크림 베이스를 만들었다. 자료로 쓸 DVD를 찾다가 떨이로 나온 음악 DVD와 제인 마치 주연의 <연인>도 함께 샀다.  벌써 많이 더워졌다. 선풍기를 사야 한다. 운동화도 한 켤레 더 필요하고, 싱크대 상판도, 나무 작업판도… 살 것들을 생각하다보면, 이런 것들을 하나도 사고 싶지 않아하는 새로운 나를 사고 싶어진다.

 by bluexmas | 2011/05/25 00:26 | Lif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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