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t

쉰답시고 잠시 소파에 누워서 책을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열한 시 반. 한 시간 십분 내에 나가야 되는데 샤워도 안 했고 일도 안 끝냈으며 밥도 먹어야 했다. 미친 듯이 마무리를 짓고 닭가슴살을 구워 놓고 냉장고에 있던 밥을 전자레인지로 데운 뒤 샤워를 한다. 그럼 끝내고 딱 적당한 온도가 되어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다. 어떨 때는 먹는 것도 짐이란 너무 뜨겁거나 하면 빨리 먹을 수 없으므로 효율이 떨어진다. 차가워도 비슷하다. 김치를 먹고 싶은데, 시계를 보니 썰 시간이 없다. 그냥 밥과 닭가슴살만 먹는다. 살을 좀 빼야 하지만 근육을 키우고 싶은 건 아닌데 웬 보디빌더 지망생 식단이 되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하고 그냥 밥을 꾸역꾸역 넣는다. 입을 벌리는데 아프다. 오른쪽 입술 끝이 헐었다. 위와 아랫입술이 또 입 안과 밖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 다양한 부분이 실로 다양하게 헐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이부분이 이 꼬라지로 헐면 벌 건 아닌데 정말 짜증이 난다. 입을 크게 벌리기도 어렵고 치실도 맨 안쪽 어금니까지 넣지 못한다. 그 어금니에 음식물 찌꺼기가 미친듯이 쌓여 이가 썩어 툭, 빠져버리는 악몽을 어제는 꾸기도 했다. 항상 작은 고통이 말썽이다. 큰 고통은 아예 사람을 압도한다. 그래서 느끼지 못한다. 고통 대신 공포가 있을 뿐이다. 내가 지금 고통을 겪고 있다는 공포. 그 때문에 정작 고통은 느끼지 못한다. 원래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상대에게 지면 더 분하다. 참을 수 있을 것 같은 고통이 괴롭히면 더 짜증난다.

대강 옷을 꿰어 입고 뛰어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불러 올렸는데 생각해보니 가방에 칫솔이 없다. 엘리베이터가 그대로 있기만을 빌며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가 치솔을 챙겨 나온다. 다행스럽게도 엘리베이터는 제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트가 오래되다 보니 엘리베이터도 좀 느리다. 13층까지 올라오는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놓치면 낭패다. 그래도 급행시간에 맞춰 역에 도착한다.

오래 전에 사 두었던 뉴 오더의 <Live in Glasgow> DVD를 즐겨보고 있다. 오래 전에 돌려보다가 너무 나이든 아저씨들이 나와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한참 동안 다시 보지 못했다. 사실 나는 뉴 오더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몇몇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보다 버나드 섬너의 목소리를 좋아할 뿐이다.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슬픈 구석이 있는데 청승맞거나 궁상떨지 않고 그냥 상큼할 정도로 슬프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 목소리 덕분에 일렉트로닉도 조금 좋아하는데, DVD를 보니 목소리에 비해 너무 늙어서 슬펐다. 물론 나는 저 나이에 더 슬프게 늙을 확률이 높지만(십 몇 년 남았다 아 이런 ㅠㅠ). 어쨌든 라이브가 너무 좋길래 가지고 있는 베스트 앨범을 들었는데 그 느낌이 전혀 없었다. 비교해보니 라이브의 기타 소리가 정말 짱짱했다. 살짝 게인이 걸린 소린-그러나 음압은 높은?-데, 귀찮아서 장비를 뒤져보지는 않았고 그냥 앰프와 기타만으로 만든 느낌이다(여기까지 쓰고 찾아보니 복스의 AC-30이라는 것 같다. 어쩐지… 라며 아는 척을 해 본다-_-). 심지어 Bizarre Love Triangle같은 곡에서 나오는 그 베이스 소리가 진짜 베이스로 내는 것인지도 몰라서 보고는 꽤 놀랐다.

말했듯 많이 좋아하는 밴드는 아니어서 노래를 잘 모르는데, 라이브에서는 이 노래가 가장 좋다. 제목은 그럴싸한데 가사를 뜯어보니 제목만큼의 느낌은 아니었다. 후회라는 말, 아니 후회 그 자체를 좋아한다. 후회란 어째 인간이 댈 수 있는, 가장 크지는 않지만 만만한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를 하기로 했다(또는 그 반대로 후회할까봐 @@@를 하지 않기로 했다)’와 같은 핑계. 어째 다들 그럭저럭 넘어가 줄 것만 같다. 후회하면 어째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런데 사실, 후회해도 별로 큰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냥 후회를 할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후회없을만큼 후회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후회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이 나은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말장난이다. 말한 것처럼 후회해도 별로 큰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냥, 후회를 할 뿐이다.

*임베드가 안 되어 그냥 링크만 더한다. 탬버린인지 하이햇인지 꽤 좋다 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V-Drum인 모양(다시 확인해보니 하이햇이 맞더라).

 by bluexmas | 2011/05/22 00:03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나녹 at 2011/05/22 02:42 
제목만 보고 설마…했는데 진짜 뉴오더 포스팅이네요.

저도 라이브dvd 하나 있는데 멤버 중 하나가 한일월드컵 티셔츠를 입고 나오지 말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5/25 09:59
네 뉴오더. 영국인들이니 축구 좋아하나봅니다.

 Commented at 2011/05/23 00: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5/25 09:59
아직도 다 안 나았어요. 은근히 시간이 걸리네요.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