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과 오븐

어제는 이성을 가진 성인 남성으로서 거의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진상의 수준에 도달했다. 누군가와 멱살잡이 직전에 간 것. 그것도 내가 세들어 살던 집을 산 남자와.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내가 집을 비우고 길 건너 부동산에 모여 계약을 마무리짓고 전세금을 돌려받기로 한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시간 맞춰 원래 주인, 나, 그리고 새 주인이 다 모였다. 새 주인이 돈을 이전 주인에게 주면 그 돈 가운데 전세금을 빼주는, 말하자면 일종의 스리쿠션인데 그건 결국 내 전세금을 새 주인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부부가 새 집 주인인데, 남자는 나와 어머니가 부동산을 들어섰을때 벌써 누군가와 이야기를 열심히 나누고 있었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또 사생활이니 언급하기도 좀 그렇고) 어디에선가 대출을 받는 모양인데, 세부사항을 놓고 상대방-회사 직원인 듯?-과 이야기를 나눌 뿐, 돈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부동산 주인은 새 주인이 돈을 온라인 송금으로 받았다며, 우리의 전세금도 결국 송금으로 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아니 이게 무슨… 그래서 어머니가, 우리는 돈을 받고 얼른 서울에 올라가서 마무리짓고 짐을 들여놓아야 하니 송금으로 받을 수 없고, 여태껏 그렇게 계약해 본 적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부동산 사장인지 부부 중 여자가 그럼 같이 가서 집을 확인하고, 돈을 찾아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와중에도 새 주인 남자는 회사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고, 어머니는 일단 우리 전세금을 빼 줘야 올라갈 수 있는데 벌써 시간이 두 시니까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내 앞에서 이 남자가 어머니에게 내 수준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대응을 했고, 나는 마침 별렀다는 듯 눈을 까뒤집고 소리를 질렀다.

사실 나는 부동산 주인 여자에게 꽤 짜증이 나 있었고, 이들 부부, 특히 여자에게도 감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부동산 여자는 집 문제 때문에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은근 슬쩍 반말을 하는 게 거슬렸는데, 이사 일주일 전인가 전화를 걸어서는 대출 문제 때문에 그러니 이사를 가면 반드시 전출신고를 해달라고 말했다. 사실 어찌 보면 부동산 주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화가 난 이유는, 이 계약이 성사되는 동안 중개인이라는 사람이 중개를 제대로 못해서 귀찮은 일이 꽤 벌어져왔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송금 문제도 그 연장선 상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내가 전세금은 제대로 못 벌지만, 이사하면 전입신고부터 하고 계약서에 확정일자 받는것 정도는 너무 잘 안다. 자신이 할 일은 잘 못하면서 잔소리를 하는 이 여자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쨌든 그러한 ‘악감정+어머니 앞+사건의 빠른 해결을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진상을 떨었는데, 두 돌이 안 된 남자아이의 아빠인 저쪽 남자 또한 그래도 가장인데 약한 모습은 보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맞서는데 거의 욕을 해 가며 내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이 덤벼들었다. 아이는 울고 부동산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말리면서 부동산 밖으로 끌고 나가는 어머니를 나는 “이래야 해결이 된다”라며 진정시켰다. 곧 원래 주인집에서, 그들이 돈을 가지고 있었다며 어서 받고 가라고 나와 어머니를 불렀다. 그래서 들어가보니, 가져온 수표라는 게 바로 계약하면 거슬러주기 어려운 것이었다. 천상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작은 단위로 바꿔가지고 가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돈을 받고 집을 확인하러 갔다. 위에서 아이 엄마에게도 감정이 좋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던가? 그녀는 집을 보러 와서는 물어보지도 않고 속옷이며 온갖 것들이 대강 쳐박혀 있는 붙박이장을 열어보았다. 그녀는 곧 오븐의 문이 이상하다며 시비를 걸었다. 어느 순간엔가 오븐의 문이 약 30%정도 덜 닫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나는 그걸 계속된 수축과 팽창으로 인한 이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오븐을 열심히 쓰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였으니, 원래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븐을 쓰다 보면 그런 경우도 생긴다고 이야기했지만(오븐을 못만들었다는 전제하에), 아이 엄마는 자기가 쓰던 오븐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물론 내가 쓰던 오븐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 오븐이 썩 잘 만든 게 아니라는 증거-가스 오븐이 뭐 그렇고 그렇지만 온도도 고르지 않으며 문 한 번 열면 정말 엄청나게 떨어진다-일텐데…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수긍할까? 아이 엄마는 내가 오븐을 꽤 자주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세금까지도 다 돌려받은 상황인데다가 전혀 예상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만만치 않게 오븐을 쓰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다 해봐야 시간 낭비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문짝이 그렇지만 쓰는 데는 별 문제 없으니 A/S를 불러서 처리하고 청구를 하든 뭐하든 맘대로 하시라고, 더 이상 말 섞고 싶지 않다고 일갈하고는 어머니를 모시고 그냥 집을 나왔다. 그 큰 금액의 수표는 주차비 500원과 수수료 2,800원 그리고 두 은행을 오가는 수고와 30분의 시간을 버리고 우리가 바꿔가지고 올라갔다.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그것도 무미건조한 나열로 쓰고 나니 뭔 삽질을 한 건가 후회가 밀려오는데(쓰는 도중 몇 번이나 그만 쓰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_-). 물론 어머니한테 그렇게 한 것도, 부동산 여자의 태만한 중개와 붙박이장을 마구 여는 예의없음 등등을 한데 모아 진상을 떨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걸 말 안 하려니 오히려 이렇게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듯. 위에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 아이 아빠도 가장이니 가족들 앞에서 체면 구길 수도 없고 해서 오히려 나보다도 더 강하게, 진짜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건 내가 이해해야 할 듯.

어쨌든, 어제는 그런 일이 있었다. 그걸 빼고는 그럭저럭 별 탈 없었다. 짐을 풀다 보니 말도 탈도 많은 오븐에 들어가는 랙이 그대로 섞여 왔길래, 내려가시는 길에 경비실에 맡겨 달라고 어머니께 드렸다. 진상이라는 건 전혀 떨 줄 모르시는 어머니는 그걸 또 그 집까지 직접 가지고 가서 전해주셨고, 아이 아빠가 어머니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 짐을 풀다보니 뭔가 또 나오던데-_- 이건 택배로 보내야 될 것 같다. 나도 그래서 미안했다고 메모라도 하나 써서 같이 보내야 하나. 사실 남자 마음은 남자가 아는 건데. 나도 애 아빠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가장에게 가족 앞에서 개망신당하는 것 같은 치욕도 없지 않나. 가장 아닌 내가 뭘 알겠어.

 by bluexmas | 2011/04/20 00:03 | Life | 트랙백 | 덧글(12)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1/04/20 00:12 
뭐 .. 잘하셨습니다.

일이 뻑뻑하게 흘러갈땐 좀 과격하게 굴어야 일이 풀리는 경우가 많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27 00:09
좋은 방법은 아니라 저도 기분인 썩 좋지 않더라구요.

 Commented at 2011/04/20 00: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27 00:10
근데 원래 그게 더 좋지 않나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at 2011/04/20 04: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27 00:10
미국 집 이야기만 하면 답답한게, 올 10월로 5년이 넘어서 모기지가 올라가거든요. 집세는 터무니 없이 낮게 받고 있고… 큰일이에요 내년에는 팔 수 있으려나요 ㅠㅠ 비공개님도 집 문제 탈 없이 해결되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1/04/20 08:45 
어휴.정말 지옥같은 일을 겪으셨네요.

중개인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이 이렇게 되더군요.

이런 게 싫어서 이사 다니는 것,집을 사는 것(사실 능력도 되지 않지만)은 가급적 안하고 싶은데

이런 일을 치르게 된다면 좀 능력있는 중개인을 만나고픈 열망이 있습니다.

진상 진상,참으로 진상…그나저나 어쨌든 서울 입성 하셨으니

*똥 밟았다 생각하시고 훌훌 털어 버리세요.아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27 00:11
일을 잘 못하더라구요… 계약 성사되면 불친절해지는 경우도 봤구요.

 Commented by delicious feelings at 2011/04/20 09:51 
아이쿠야~고생하셨네요…

글두 나쁜일은 툭툭…털어내시고 새집에서 기분좋게 시작하시길바랄께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27 00:11
고생은요 뭐. 근데 지금 이사온 집이 더 오래 되었어요 ㅠㅠ 어쨌든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마리 at 2011/04/21 09:17 
뭐 잘하셧네요 제 속이 다 시원

이사할때 암묵적인 집주인 행세 그리고 중개인의 주인과 세입자에 대한 태도 구분

이런것 때문에 은근히 기분 상하죠

어머님이 대인배시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27 00:12
네 저희 어머니가 좀 대인배시죠.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 해봤는데 정말 그렇기도 하겠네요.

참, 저 이번 주 내로 오븐 들여놓을 것 같아요. 막판에 완전 다른 걸로 급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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