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사

 했다. 세 들어 살기로 한 집 주인이 아침에 이사 해서 계약을 마무리 짓고, 가지고 들어온 짐을 옮기고 청소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이건 작은 이사, 싸서 보냈던 짐들이 바다를 건너 오면 그때 큰 이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봐야 나는 상자를 열고 짐을 다시 정리하는 수준의 일만 하게 되겠지만.

기억하기에 내가 우리나라를 떠날 때쯤, 아니면 그것보다 한두 해 쯤 전 부터 구태의연한 예전의 아파트의 디자인 개념에서 벗어나는 아파트들이 선보여지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작년에 지어서 입주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 아파트 단지 역시 7년 전의 내가 생각하기엔 상당히 생소한 개념으로 디자인 되어 있어 아무리 직업인이라고 해도 어리둥절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구석이 많다. 기본적인 단지의 조성부터 각 단위 주거의 배치, 붙박이 가구 등등… 뭐 직업인이라고 해도 지금 이 마당엔 직업을 그렇게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배운게 도둑질이다 보니 반 본능적으로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들여다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디자인 하는게 이 바닥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듯… 기본적인 사람들의 욕구-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 즉 면적을 차지하고 싶은-와 조례나 법 따위가 버무려지면 때로 건축적인 최적해를 찾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될 때도 있으니까. 그 작년 초, 아주 잠시 안양 어딘가의 아파트 설계경기를 하는 우리나라 모 사무소의 일을 같이 했을 때에도, 밥통이나 보온병 따위를 디자인해 놓고 건축이라고 우기면서 디자인이 왜 먹히지 않냐고 답답해하던 디자이너님의 꼬장에 더 답답해 했던 생각이… 그렇게 그려서 해결되는 아파트 였으면 우리나라는 아마 벌써…

어쨌든, 또 다시 나의 공간이 생겼다. 부모님이랑 같이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사실 그것도 어느 정도의 기간을 넘기면 서로가 피곤해진다. 내가 부모님의 생활 습관에 맞춰서 살지 않게 된 것도 근 15년, 조금 더 지나면 나도 부모님의 눈치를, 또 그 양반들도 내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제는, 서로 좋은 것만 봐 주면서 사는 시기가 되었다. 허물을 보면서 왜 저기에 허물이 있는가, 왜 나는 허물을 보고 또 보여주는가, 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삶은 피곤해진다. 또 지금부터 10년 정도가 더 지나면 나는 나이가 또 너무 많아지고 부모님은 또 너무 기력이 없어질 수도 있다. 지금이,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서로 그냥 좋은 것만 보고, 너그럽게 또 아껴 주면서만 살기에는. 그래서 언제나 나는 역설적으로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가까이 하고 싶어서 멀리 한다는 말은 너무나도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러한 관계도 있다. 멀리 하고 있을 때 소모되지 않는 에너지를 모아 가까이 있을 때 몰아서 쓰는, 뭐 그런 관계.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리를 두기 위한 공간, 으로 오늘 작은 이사를 했다. 아직도 무엇인가 어색함을 참을 수 없는 기분으로 창 밖을 내다 보면서, 잘 지내야 될텐데, 잘 지내야 될텐데, 라고 바램 비슷한 생각을 품어 보았다. 잘 지내야 될텐데.

 by bluexmas | 2009/04/18 22:57 | Lif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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