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베르겐

국위 선양을 위해 금메달을 따야되는 운동선수는 스테로이드와 성장호르몬을, 물가 비싼 나라를 달러빚까지 내어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의무관광을 위해 에스프레소 다섯 잔을… 그러나 베르겐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오슬로보다는 약간 포근한 날씨지만 그래도 나가서 뭔가를 보기보다는 방에서 부침개나 부쳐 먹으면서 배를 두들기면 딱 좋을 날씨. 부침개는 못 부쳐 먹더라도 방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안 생기는데 지금의 이 호텔(그렇다! 어제 열 한시에 방을 구한 이 곳은 정말 ‘호텔’ 이다. ‘호텔의  거죽을 쓴 모텔’ 이 아니고)을 열 두시까지 비워줘야 한다. 물론 그 전에 어제 묵기로 한 곳에 다시 찾아가서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봐야지…

이 곳의 느낌은, 아직 뭐 본 것도 없지만, 오슬로보다 나아보인다. 오슬로는 뭔가 엉거주춤한 느낌이었다. 얼핏 보기엔 세련되어 보이지만 또 그렇다고 뭔가 아주 도시같이 세련된 느낌은 없고, 또 그렇다고 진짜 역사나 전통 같은게 남아있는 옛날 유럽 도시의 느낌도 또 거세된 듯한… 뭐 이틀 있어놓고 아는게 뭐있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대낮에 어느 구석에서 아직도 앞길 창창해보이는 젊은 남자가 팔에다 주사바늘 꽂아넣는 광경을 목격하고 정떨어졌다. 게다가 현금카드를 먹어버린 것도 그렇고…

사실 노르웨이는 술값이 비싸서, 여기에서 술을 마시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오슬로에서는 아예 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어제는 너무 짜증이 나서 호텔 근처 어느 바에서 포도주를 마셨다. 보니까 책들에도 소개가 된 집이던데 오픈 마이크 같은 걸 하는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예정대로 모든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더라면 ‘심신이 피로했던’ 이라는 말은 입에 담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텐데,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니 아무래도 ‘심신이 피로했던’ 하루라 술을 마시고는 호텔로 돌아와 바로 잠이 들었다… 사실은 블로그에 글 올리고 잠들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에야 일어나 사진을 옮기고 아직 어제의 기록은 남기지도 못했다.

내일 아침엔 아주 일찍 일어나 새벽 여섯 시 비행기를 타고 일단 코펜하겐으로 들어갔다가 거기 공항에서 바로 Arhus라는 도시로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게 바보짓이라고 결론을 내린 건, 바로 여기에서 Arhus로 가는 비행기편도 찾아보면 있었을 법 한데 괜히 코펜하겐으로 갔다가 또 기차를 세 시간 반이나 타고 이동하도록 계획을 짠…

하여간 베르겐의 오늘 아침은 비.

참, 오랫만에 찾아오신 듯한 분도 있고 해서 얼른 답글 달고 싶은데 다시 짐을 싸고 호텔을 옮겨야 할 것 같아서… 간신히 블로그질은 하고 있지만 시간이 빠듯해 답글 못 남기는 이 마음도 은근히 답답하군요, 흐흐.

 by bluexmas | 2008/09/10 17:12 | Lif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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