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절한 월요일 잡담

월요일 아침, 눈을 뜨기도 전에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아침 햇살보다도 먼저 의식을 쑤시고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 병가는 56시간 남았다는 것. 심각하게 오늘 하루 집에서 쉴까 생각해본다. 면도를 하기 전에 세면대에 양 손을 짚고 구부정하게 서서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한다. 얼굴에 면도 거품을 바르면 출근, 아니면 병가다. 평일과 주말의 너무 다른 생활 습관 탓에 월요일 아침이면 몸상태가 늘 별로였지만 오늘은 정말 별로 가운데 별로였다. 더운물을 튼다. 물이 줄줄 흐르는 소리를 넋놓고 들으며 또 생각한다. 그리고 세수를 시작한다, 오늘은 출근하는거다. 언제나 원칙은 휴가가 아닌 이상 한 달에 이틀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번째 주일에 독립기념일로 하루 더 쉬었으니 이번 달은 이렇게 가는거다. 아니면 끝도 없어진다.

오늘 아침 몸상태가 이렇게 별로였던 이유는, 어제 드디어 잔디를 깎았기 때문이다. 마당이 딸린 집에 2년 가까이 살면서 잔디를 처음 깎았다면 누가 믿을까? 물론, 한 번도 안 깎았던 것은 아니다. 잔디깎기로 깎은게 처음이라는거지. 돈을 쓰기 싫어서라기보다 물건을 집에 들여놓기 싫어서 작년 여름 손으로 들고 깎는, 아니 사실은 다듬는 잔디깎기를 사서 정말 마지못해 듬성듬성 잔디를 다듬으면서 간신히 한 해를 넘겼다. 덕분에 내 집 마당은 늘 말끔한 다른 집의 그것에 비해 늘 고기 자르는 가위로 대강 다듬었다는 탈옥수의 머리 같았다. 올해는 더 이상 그런 꼴로 살 수가 없어서 내가 직접 깎든지 누군가를 고용해서 깎든지 어떻게든 깎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사람을 쓰는 게 한 번에 $50씩 거의 2주에 한 번이라나…? 내가 파산을 하려면 주지육림에 파묻혀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장렬하게 가는거지, 잔디 깎는데 사람 쓰다가 가는 건 사나이의 길이 아니다 싶어 그냥 잔디깎이를 사서 내가 직접 깎기로 했다(여기에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내 재산규모로는 주지육림에 음주가무라해도 PET병 소주에 고등어 통조림 찌개 정도의 소박한 정도나 가능할 것이라고… 삼겹살도 안 될 듯T_T). 작년부터 인터넷에서 봐뒀던 제품이 마침 근처 가게에 있었다. 환경오염도 싫고 소음도 싫어서 전기 모터로 돌아가는 제품을 샀는데, 너무 잔디를 안 깎아서 뒷마당은 완전히 밀림으로 탈바꿈, 그 긴 잔디를 억지로 밀다가 전원 차단기가 내려가는 비극이 벌어졌다. 안되겠다 싶어 작년부터 쓰던 손들이 잔디깎이로 일단 길이를 줄여놓고 깎기로 하고 두서없이 잔디를 쳐내는데 몇 주전에 없앴던 불개미 무덤 말고도 무려 네 동이나 되는 불개미 집합 주거단지가 그 좁은 뒷마당에 옹기종기 모여있는게 아닌가! 아, 요즘 부엌에 창궐하는 불개미의 본거지가 여기였구나 싶어 다시 한 번 치사량 백만배의 하얀 가루를 살포하였다(엄마, 눈이 오나봐… 하얀 가루가 날려. 아니, 여기는 겨울에도 눈이 안 오는 더운 지방인데 한 여름에 무슨……). 그리고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면서 남은 잔디를 다듬다가 전깃줄을 잘라먹었다. 이왕 손을 댄 거 끝내고 싶어서 다시 가게로 부랴부랴 차를 몰아 새 전깃줄을 사왔으나 안전을 지나치게 고려한 전원이 다시 나가버렸고 어디에서 나갔는지 찾지 못해 뒷마당 잔디는 그렇게 다시 한 번 탈옥수 머리를 한 채로 다음주를 기약해야만 했다.

아, 그러니까 잔디 깎는 노동이 장난 아니게 힘들었다는 거다. 거기에 더러움을 도저히 참지 못해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1층을 청소기로 밀고 마루를 닦고… 그래서 오늘 아침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하루 쉴까 생각하던 와중에 그래도 회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건 날씨. 일어나서 모든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 한 5분 동안 아침 공기다운 찬 공기가 들어오더니 곧 더운 바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오전 여덟시도 채 되기 전에. 오늘은 집에서 냉방 틀어놓아도 손 하나 깜짝하기 싫을 정도로 괴롭겠다 싶어 그냥 회사로 향했다. 일하는게 남는거다, 월급쟁이는.

보통 월요일 아침은 아무나 붙잡고 하는 의미없는 수다로 시작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주말에 영어를 잘 안 쓰다가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바로 일에 관련된 얘기부터 시작하면 말을 제대로 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보통 점심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면 짜증이 나니까 준비운동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컴퓨터를 켜고 설정을 가져오는 동안 부엌 냉장고에 도시락을 넣어두려 가면서 만나는 좀 친한 얼굴 아무나를 붙잡고 아무 수다나 떤다. 오늘은 당연히 잔디깎는 얘기를 두어번 했고 그러는 동안 상태가 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월요일 아침이 시작되는 것이다.

요즘은 금요일 저녁마다 거의 작은 마감이 있어서 금요일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금요일 저녁은 언제나처럼 찾아오지만 일을 하다보면 마치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지겹도록 반복적인 일을 느낌이 없을때까지 해야 퇴근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얼굴은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르고 몸은 술을 부른다. 그러나 술마시기 전에 달리기를 빼먹으면 안된다. 지난 금요일에도 일이 굉장히 반복적이면서도 부담이 컸는데, 그래도 시간에 맞춰 끝낼 수 있는 분위기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새 아이폰으로 발표 자료에 넣을 모형 사진 찍어보자고 하기 전까지는… 사진을 찍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보낸다? 쓰는 기능말고는 손도 안 내는 내가 메일 계정을 제대로 손봐놨을리도 없고. 결국 메일 계정을 손봐서 회사 건물 내에서 굉장히 느린 인터넷을 통해 사진을 내 메일 계정으로 보내고 그걸 또 다시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내는데 45분이 걸리고야 말았다. 요즘은 사진을 찍어서 현상소에 맡겨도 30분이면 나오지 않던가? 첨단 기술이 사람을 돌아가게 만드는 멋진 세상이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한가해서 약간 느긋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차 수리를 맡긴 공업사에서 전화가 왔다. 수리를 위해 뜯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해서 차를 다음달 15일까지 맡겨야되고, 견적은 물론 보험회사에서 대겠지만 처음 견적의 1.5배가 더 든다고 했다. 놀란 탓에 아침에 수다를 떨면서 회복한 영어가 다시 더듬거리는 수준으로 쏙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거 정말 이렇게 해서 고쳐야 되나, 라는 생각이 또 들기 시작했다. 일단 렌트카 지점에 전화를 해서 생각보다 차를 오래 빌려야 될 상황이 되었는데 지금 차는 도저히 탈 수 없으니 원래 빌리려고 했던 소형차로 당장 바꿔야 되겠다고 나 답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지금 타는 차는 미국찬데, 말하자면 소형차와 Sports Utility Vehicle의 사생아와 같이 생겨 먹었는데, 창문이 너무 작게 뚫려 회사에서 집까지 30분 조금 넘는 동안 운전을 하면 20분쯤에서 멀미와 폐소공포증이 생겨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진이라도 올려보자, 이렇게 생겨먹었다. 내부는 인체공학과 각자의 길을 걷는 구조로 디자인되어 편리함보다는 인내심을 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다. 내 옆에 앉은 M선배도 사고가 나서 차를 빌렸다는데, 얘기하는 걸로 봐서는 PT Cruiser 인 것 같지만 차가 아주 개같다고 했다. 몰아보면 왜 미국차가 안 팔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차 생각을 하니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하여간 내일 다른 차를 가지러 가기로 했다. Enterprise라는 이 렌트카 회사는 아주 빌어먹을 회사다. 3년전엔가 사고가 났을 때 소형차를 빌리기로 하고 갔는데 없다며 역시 미국차로 엄청나게 큰 SUV를 빌려주었다. 이틀인가를 몰았는데 탱크를 모는 것 같아서 대리점을 이리저리 수소문, 다른 대리점에 토요일 아침 일찍 가서 역시 미국차로 제일 작은 놈을 빌려왔다. 며칠을 몰고나서 일요일인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는 연말에 맞춰 뭔가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는데 열쇠가 구멍에서 빠지지 않았다. 열쇠를 못 빼는데 차에서 어떻게 떠나… 선물을 사기는 커녕 겨울 저녁 추운 주차장에서 화장실도 못가고 달달 떨다가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 열쇠공을 불러 비상 열쇠를 만들어 차를 집에 몰고 왔고 그 다음 날, 월요일 아침에 또 다른 지점에 가서 다른 차로 바꿔타야만 했다. 그러니까 좋은 회사다.

너절한 잡담에 너절한 차 얘기가 너무 많은데, 결론은 공업사에 전화를 걸어 정말 심각하게 이거 고쳐 탈 가치가 있냐고 물어봤다는 것… 그래도 용기를 북돋아 주더라. 아직은 탈만하다고. 나랑 받은 BMW도 2천불 안쪽으로 고쳤다는데 참…  뭔가 더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더 너절해질 것 같아서 오늘의 잡담 끝.

 

 by bluexmas | 2008/07/29 11:55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笑兒 at 2008/07/29 19:51 

저도 엔터프라이즈는 좋은 기억이 없는거 같아요…-_-;;

(자기들이 23살 안된거 알면서도 미니밴 빌려준다고 해놓고선 -_-;;

막상 가니깐 규정상 안된다고 한참 떽떽거리더니만

니네가 그랬잖아!! 라니까;; 다른 회사 연결해주던;; …. -_-;; )

차 문제- 잘 해결되기를 빌어요 🙂

화이팅-

 Commented by basic at 2008/07/30 01:19 

잔디를 안 깎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경고문 이외에;;)

 Commented by Eiren at 2008/07/30 01:32 

크라이슬러나 GM 차들이 정말 이상하게 창문이 작더군요.. 올해 초에 저도 잠깐 빌릴 일이 있었는데 차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었어요;; Convertible이 인기있다는 나라에서 왜 창문을 그리 작게 만드는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7/30 12:05 

笑兒님: 제일 구린게 엔터프라이즈 같아요. 차는 오늘 바꿔왔는데 선글라스를 놓고 와서 정말…T_T

basic님: 안 깎으면 경고 다음엔 벌금이고 이웃아닌 이웃들이 집 값떨어진다고 미워하다가 집을 태워버린다던데요?^^

Eiren님: 누군가의 말을 빌자면 “아니 차를 발명했다는 놈들이 왜 이렇게 지랄같이 차를 만드는거야 대체”

공감이 되시는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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