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을 말려 죽이는 자질구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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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음식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한편 이해하는 구석도 있고 절대 바뀌지 않을 것들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또한 그와 별개로 한편으로는 재료 등등의 현실이 제약이라고도 분명히 알고 있지만 현재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이 요리사의 자기 표현을 결사적으로 막을 만큼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가면 갈 수록 심경이 복잡해진다는 말인데, 그런 가운데 분명히 갖춰야만 하고 또 쉽게 바뀔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들을 여전히 보고 또 본다. 자질구레하다면 분명히 그렇지만 한편 굉장히 중요하므로 음식과 별개로 파인 다이닝을 말려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1. 식사 도중 일어나 화장실이든 어디든 갔다 왔는데 냅킨을 접어 놓지 않는다. 먹는 이가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몰라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더 문제다. 같은 맥락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식사를 가져다 놓는 것도 원칙은 아니다. 먹는 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음식의 최적 구간이 지나버리고, 그래서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3시간 씩 앉아서 코스를 먹어도 자리 비우는 손님을 싫어하는 셰프가 있다고 들었다. 이런 사정을 알면 먹는 이도 아마 요리를 먹는 중간에 자리를 비우지 않고, 타이밍을 보아 가며 화장실에 간다. 그것도 배려라면 배려다.

2. 내온 음식에 대해 질문하면 모른다. 요즘은 요리의 이름이 대체로 핵심 문법을 빼고 재료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므로 때로 도움이 안 될 정도로 설명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미리 조율을 할 텐데, 언급되지 않은 재료라든가 다른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물어보면 멋적은 웃음과 더불어 ‘모른다’는 대답이 바로 나온다. 대체로 서비스 전에 접객 담당들이 지배인, 셰프와 모여서 설명해주는 자리를 가지지 않던가? 단발성 메뉴가 등장하는 갈라 디너 같은 것이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3. 관찰을 안 한다. 상황에 따라 먹는 이가 여러 가지를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물론 근처의 접객원을 부를 수도 있지만 파인 다이닝이라면 먹는 이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일정 수준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저 사람에게 뭔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주시’지만 먹는 이는 의식하지 못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접객원이 먹는 이의 시선을 아예 회피하고 주방으로 발뺌하는 상황 같은 건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 나열한 이 세 가지는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결핍이 용납되지 않는, 교육과 훈련으로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문제이다. 가장 사람을 잘 읽어야만 할 파인 다이닝 종사자가 온몸으로 무관심을 드러내면 음식이 맛없을 때보다 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난 이제 음식 잘 해야 한다 이런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것들도 잘 안 되는데 음식이 잘 되기가 어렵고, 이런 것들만 잘 되어도 파인 다이닝의 경험이 필요 이상으로 좌절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말도 안되는 이들이 파인 다이닝이랍시고 굴종적인 접객을 원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이런 요소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현실은 이해가 어렵다. 이런 요소의 결핍이 불신에 방점을 찍어 파인 다이닝을 말려 죽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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