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삼도갈비-‘돼갈’의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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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다. ‘골든 타임’이라는 표현은 함부로 쓰면 안된다. 지금까지 어떤 글에도 이 표현을 쓴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돼갈’을 먹으며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돼지갈비가 적기를 놓친 상태에서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을까. 벽제갈비처럼 비싼 곳, 그래서 직원이 세심하게 상태를 보아가며 구울 수 있는 곳이라면 가능할까? 심지어 그런 곳도 찬찬히 헤아려 보면 제대로 익은 갈비를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직원이 정말 세심하게 굽더라도 워낙 빨리 익을 뿐더러, 적기 자체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먼 곳에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너무 익어 푸석푸석한 돼지갈비를 먹고 있다.

이곳의 냉면은 ‘냉면의 품격’에서 다루었으므로 갈비 이야기만 해보자. 거대한 접시에 담겨 나오는, 양념된 고기를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돼지에는 이제 ‘갈비’라는 단어를 부위 아닌 요리 문법의 용어로 써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고기: 칠레산, 뼈: 국산’이라는 조합 자체부터가 신비롭지만 이제는 그 둘이 붙어서 나오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넓적한 고기 옆에 초라하게 딸려 나오는 앙상한 뼈를 바라보는 마음이 애처롭달까. 이런 수준이라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려고 너무 애쓰는 건 아닐까?

그런 고기를 불판에 올려, 거의 볶다시피 굽는다. 그나마 직화에 올려 놓으니 ‘굽는다’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고기는 구워지지 않는다. 개별 조각의 움직임이 전혀 보장받지 못한 채 직원의 집게에 이리저리 집단으로 휘둘릴 뿐이다. 이렇다면 굳이 자리에서 구워 먹을 필요가 있을까? 칼집과 양념 등으로 애초에 빨리 구워지도록 손질된 것을 센 불에 대강 볶는 수준이라면 벌겋게 타는 숯불이 식탁을 오가는 위험을 감안해서라도 차라리 조리 자체를 주방에서 일괄 통제하는 게 낫다. 숯불과 불판을 유지 및 관리하는 수준의 노력이라면 무쇠팬 쯤은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불 위에서 구워지는 게 고기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냉면의 품격’을 위한 취재 이후, 일부러 고기를 평소의 내 양보다 많이 시켜서 꾸역꾸역 먹어보았다. 무엇보다 일정량 이상을 먹고 난 뒤 냉면의 맛이 궁금했다. 자학적인 생체실험의 답은 물론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앞에서 돼지에는 이제 ‘갈비’를 부위가 아닌 조리 문법을 위한 용어로 써야 한다고 말했듯, 간장 양념의 압도하는 단맛은 미각을 금세 뒤덮는다. 대체로 고기라는 식재료의 맛은 여운이 길다. 소금 위주로 간을 할 경우, 씹으면서 나오는 단맛과 감칠맛이 소금으로 생기를 얻어, 지방을 타고 길게 늘어진다. 그런데 설탕 위주의 양념일 경우 이 여운이 극적으로 뒤집힌 뒤 짧게 끊어진다. 게다가 김치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반찬이 갈비와 거의 비슷한 간장 위주의 단맛 양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피로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이곳의 갈비가 다른 곳의 것보다 더 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굉장히 평범한 수준의 맛내기일 텐데, 어쨌든 열심히 먹고 난 뒤 냉면을 받아 들면 나름 열심히 만든 국물이 무삼면옥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맹물 같다는 말이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은 누구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어떤 기획이나 컨설팅의 결과가 이런 조합을 권장했는데 참 궁금하다. 대부분의 반찬이 젓가락도 가지 않을 수준으로 만듦새부터 조악하다는 것만 빼놓는다면 여느 동네의 갈비집으로는 크게 떨어지지 않을 수준인데, 오히려 평양냉면이라는 회심의 카드가 장고 끝의 악수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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