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평양면옥-스테인리스 주발과 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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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점심을 살짝 넘긴 시각이었지만 그래도 대기가 좀 있었다. 그런데 혼자라고 말하자 따로 자리가 있다며 먼저 들어가라는 게 아닌가. 장충동 평양면옥에서는 ‘1인석’에 앉은 적이 없고 필동면옥의 지정석 지옥을 겪은지라 ‘여기도 지옥일까’의 비관주의와 ‘그보다 더한 지옥은 없겠지’의 낙관주의가 뒤죽박죽인 심정으로 자리를 찾았다. 알고 보니 주방 맨 앞의, 밭게 붙여 놓아 한쪽은 전혀 사람을 앉힐 수 없는 4인용 식탁의 반대편이었다. 말하자면 “배려’에 속하는 셈.

냉면이 좀 늦게 나오는 김에 열린 주방으로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냉면을 조립하는 ‘어셈블리 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고명을 미리 주발에 담아 두고 삶아 헹궈 물기를 걷어낸 면을 담는다. 물냉면일 경우 주전자로 국물을 부어, 비빔냉면일 경우 국자로 양념을 끼얹어 한 그릇을 완성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스테인리스 주발이 겹쳐진다. 고명을 담은 뒤 이를 겹쳐서 보관한다는 말인데, 그럼 모양-정확하게는 곡률-을 감안할 때 위에 얹히는 주발의 바닥 둥근 면이 아래에 놓인 주발에 담긴 고명에 닿을 확률이 아주 높다. 과연 괜찮은 걸까? 가본 이라면 알겠지만 장충동 평양면옥의 주방은 꽤 개방된 상태이고 공간의 맨 앞에서 냉면을 ‘조립’한다. 따라서 나는 음식점이 이를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럴까? 가장자리 단면이 입이나 혀에 닿는 불쾌함이나 특유의 비린내-특히 삶은 계란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만으로도 스테인리스 주발은 이제 그만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완전히 겹칠 수 있도록 고안한 곡률이라면 굳이 스테인리스가 아니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제 12,000원까지 오른 음식에 스테인리스는 과연 격이 맞는 재료일까?

*사족: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장충동 평양면옥의 냉면에서 털이 나왔다. 어떻게 보아도 절대 머리카락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모두의 정신건강을 배려해 사진은 올리지 않겠다). 비위가 상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므로 딱히 화는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달까. ‘이런 정도의 사고(?)가 벌어진다면 대체 책에는 어떻게 기록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 수없이 먹어온 이곳 냉면의 평가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쳐야만 맞는 걸까? 사실 한없이 대수로운 일이거나 직업인 ‘코스프레’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공정함을 최대한 추구해야 하므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여간 고민은 나의 몫인데, 대부분의 경우 나는 이후의 처리 과정에서 불만을 느낀다. 일단 적절히 사과하는 경우가 드물다. 글을 쓰며 늘 이야기해왔지만 소비자에게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실수를 인정하는 사과면 충분한데 언제나 ‘아 재수 없다 이런 일이 생겼네’ 같은 반응이 나온다. 내가 냉면에 털을 집어 넣은 것도 아닌데 이런 반응이 나오면 곤혹스럽다.

또한 많은 경우 ‘다시 해오겠다’고 제안하는데 역시 이해가 안 간다. 원고를 마무리하는 기간이라 유난히 아무 생각이 없을 뿐더러 항의 이상을 할 에너지도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 한 구석에서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이었어도 비위가 상할 판국인데 지금 이것이…

냉면이 배부른 음식도 아니니 2/3쯤 먹은 상황에서 타의로 젓가락을 놓아야만 하는 상황이 달갑지도 않지만, 음식의 정서적인 측면을 감안하면 다시 내온 냉면이 들어갈 리가 없다. 지금도 별 생각 없고 곱씹지도 않지만 앞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지도 알 수가 없다. 결국 먹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현을 하고 나서며 냉면값을 받지 않았지만(다른 메뉴도 시켰다), 아직도 이런 상황에서 오래된 음식점들이 체계를 갖춰 대응하지 않는다.

1 Comment

  • 신지섭 says:

    식당에 들어서서 주문하고 음식을 받고 먹고 나오는 과정까지가 그 식당의 경험일텐데 아직 우리는 갈 길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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