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게장과 한식의 고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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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과 굉장히 느슨하게 관련된 미팅을 가진 적이 있다. 음식을 주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한식의 고유성이 화제로 올랐다. 음식은 게장이었다. 대체 한국은 언제부터 게장을 담가 먹었나? 그리고 게를 다른 매개체도 아닌 간장에 담가 먹는 식문화가 또 있는가? 대략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 한식의 일원으로서 게장이 지닌 고유성의 핵심이 간장에 걸려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실용적이지 않은, 즉 현재 음식의 변화에 쓸 수 있는 패턴을 도출해낼 수 없는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데다가 굳이 간장에 국한시키지 않는다면 재료에 비슷한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조리 문법은 희귀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산으로 재료를 조리하는 세비체 같은 음식도 있으며, 굳이 발효장류의 역량과 영향만을 따져야 한다면 한식 내에도 장아찌 같은 음식은 흔하다. 특히 해산물이 아니라면, 채소의 경우라면 간장에 담근 장아찌는 많다.

또한 간장 이전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 온다면 소금이 있을 테니 염장, 특히 해산물의 염장이나 발효 등이라면 또 많은 예가 있다. 말하자면 나는 게장이 너무나도 고유한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설사 너무나도 고유하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의견은 적당히 엇갈렸다.

그리고 다음날, 하필 간장게장을 먹을 일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정해 놓았던 저녁 자리의 메뉴였던지라 전날의 대화와는 상관이 없었는데,  그 자리에서 간장에 절인 게를 쓴 쏨땀을 먹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로 어제 했던 모종의 일에서 간장게장이 등장하는 바람에 딸려온 자료집을 통해 간장게장의 역사나 비슷한 중국의 음식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물론 이 글과 딱히 상관은 없으니 무엇인지 굳이 언급은 하지 않겠다.

내가 음식을 이해하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1. ‘이 음식은 어떻게 만드는가? 재료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음식으로 변화는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원리는 무엇인가?’를 이해한다.

2. ‘비슷한 또는 같은 원리를 적용하는 음식으로 무엇이 있는가?’를 지금까지 이해한 음식의 네트워크에 연결시킨다.

3. 새로운 음식을 접하거나 또는 만들어야 할 경우 1~2의 과정을 되풀이한다.

나는 이를 음식의 외연을 넓히는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간장게장을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품는다.

1. 게장이 음식으로 기능할 수 있는 핵심 요인은 바로 껍데기다. 덕분에 독한 간장이 지나치게 침투하지 않아 연하다 못해 무른 살이 필요 이상으로 변성되지 않는다.

1-1. 심지어 이러한 게도 간장에 썩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간장에 오래 담가둔 게장은 살이 녹아 결국 짠물만 남는다.

2. 그렇기 때문에 게는 되지만 새우에게는 무리다. 따라서 새우장이라는 음식에는 믿음이 없다.

3. 게는 수율이 정말 낮은 식재료다. 가식부, 즉 살의 부위가 낮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을 발라내어 간장에 담그느니 통째로 담가버리는 게 더 효율이 좋을 수 있는데, 만약 획기적인 식재료의 가공법이 개발되어 살만 아주 효율적으로 추출해낼 수 있다면 과연 껍데기째 담그는 게장의 의미는 지속 가능할까?

나는 언제나 궁금하다. 지금 한식의 고유성에 대해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유성에 대한 고민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현재의 시도와 그 패턴에 회의한다. 그것은 1. 한식이 고유하다는 믿음이 팽배하고 2. 그 믿음이 현재 한식의 떨어지는 완성도를 정당화하는데 쓰이고 있으며 3. 궁극적으로 한식이 세계 음식의 문법 속으로 편입되는데 가장 큰 방해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리려면 표준화를 거쳐 현재 유통되는 언어 체계로 설명해야 하는데, ‘한식은 고유하므로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라는 멘탈로 버티고 있달까? 생각하면 늘 슬퍼지는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츄라이 츄라이’의 태도 말이다. 과연 이런 태도의 뒤에 두려움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세계에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음식 언어를 몰라서 표현할 줄 모른다는 두려움, 설사 알더라도 그 언어로 표현해 내놓았을 때 무시 혹은 비판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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