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금옥당- 착잡한 팥죽

IMG_17710.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다.

1. ‘팥죽’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냥 ‘끓인 팥’에 더 가까웠다. 착잡했다.

2. 끓인 팥이 팥죽이 되려면 맛을 불어 넣어야 한다. ‘끓인 팥+a=팥죽’일텐데 ‘ a’가 거의 없었다.

3. 한국에서 대체로 ‘a’는 소금의 부재+희미한 단맛이다. 이 끓인 팥도 예외는 아니었다. 짠맛도 단맛도 없으면 차라리 백지가 될 수 있을 텐데, 끝에 감도는 뒷맛이 불쾌해서 오히려 먹는데 방해가 된다.

4. 그래서 몇 숟가락 먹지 않아 물렸다.

5. 식탁에 설탕 종지가 있었는데 열어보니 (유기농) 황설탕이었다. 맛의 대부분을 먹는 이가 완성시키라는 ‘외주’는 일종의 책임 회피다.

6. ‘내-만드는 이-가 80%를 완성해서 낼 테니 나머지 20%를 기호에 따라 조정해라’라는 수준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경우는 100%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드는 이는 그저 손을 놓고 있다.

7. 게다가 입자가 굵은 황설탕은 걸쭉하게 끓인 팥에 잘 안 녹는다. 사실 시럽이 아니라면 뭐라도 썩 잘 녹지 않을 거라고 봐야 한다. 그나마 입자가 고운 백설탕이 더 잘 녹을 텐데, 굳이 황설탕이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8. 그래서 이 끓인 팥은 어떤 맥락에서 먹어야 하는 음식인가. 헤아릴 수가 없었다.한 그릇  7,000원이 비싸지는 않다. 하지만 그 가격이 거의 전부 양을 결정하는데 쓰였다면 생각은 달라진다.

9. 팥은 단맛과 짠맛을 둘 다 받아들일 수 있고, 끼니나 후식, 어느 경우로도 먹을 수 있다. 따라서 계획이 필요하다. 어떤 맛을 낼 것인가? 끼니인가 후식인가 간식인가? 얼마 만큼 낼 것인가?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다.

10. 이런 게 없다면 팥죽은 계절 메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커피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차갑거나 뜨겁게 먹을 수 있다. 아이스크림은 겨울에도 팔린다. 그런 세상에서 팥죽이 굳이 겨울 메뉴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11. 생각 없는 고명. 특히 견과류는 이제 좀 그만 보고 싶다. 예쁘지도 않고 그 자체로도 별 맛이 없으니 전체에도 보탬이 안 된다. 그렇다고 질감이 딱히 역할을 맡지도 않는다. 간도 하지 않고 볶는 정도로 대체 무슨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정말 저런 재료가 한 그릇의 팥죽이라는 시스템에 보탬이 되기를 원한다면 좀 더 적극적인 조리가 필요하다.

12. 물론 밤의 사정은 좀 다르지만 맛의 측면에서 보탬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13. 딱히 보려고 본 건 아닌데 주방에서 개인에게 나가는 팥죽 준비(데우기)를 보고 새알심이 이렇게 나오는 형국에 대해서 이해했다. 없어도 될 듯.

14. 가마솥이 굳이 필요할까.

15. 상호나 인테리어까지 아울러서 생각해본다면 어떤 복고의 추구가 목표 같은데 음식 외적인 측면은 그렇다고 쳐도 대체 한국의 근현대 어느 지점에서 본받거나 재현해야만 하는 양식이나 완성도가 존재했는지 잘 모르겠다.

16. 아니 사실 이런 인테리어 공간의 한복판에 비싼 오디오가 놓여 있는 걸 보면 궁극적으로 나오는 그림은 한국이 아닌 일본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닌데…

17. …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의식적으로 무시하려고 드는 건 아닐까.

18. 다만 천창은 꽤 좋았다.

19. 양갱은 시식만 해서 딱히 얘기를 안 하는 게 낫겠지만 적어도 팥죽과 똑같은 맛의 설계(혹은 그 부재가)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래서 사지 않았다.

20. 떡은 사다 먹었는데 다음 기회에 쓰겠다.

1 Comment

  • says:

    안그래도 집근처에 새로 생겨서 궁금했던 차에 다양한 각도에서 비평해주셔서 매우 잘 읽었습니다. (팥죽이나 팥소를 직접 끓여먹는 경우가 많아서 조리 후에 추가하는 당이 얼마나 따로 노는지 알기에) 5번은 유난히 공감이 되네요. 한식의 품격에서 언급하셨던 맥락에서도 대공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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