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음식과 콧털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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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을 쓰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제쳐두고 다시 쓴다. 물론 실화다. 가격대로 보아 절대 끼니 음식이라고 할 수 없는, 비싼 음식을 파는 곳에 갔다가 홀에서 일하는 직원-아르바이트도 젊은이도 아니었다. 주인일 가능성도 있었다-의 코에서 삐져나온 털을 보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식사를 마친 뒤였으므로 선택에 본질적으로 영향은 미치지 못했지만, 되려 그랬기에 오랫동안 생각했다. 과연 음식을 고르기 전에 콧털을 보았더라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기본적으로는 ‘음, 저것만 보아도 이곳은 가격에 걸맞는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겠군’이라고 마음 속으로 체념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앉아서 음식을 먹을 것인가? ‘저것만 봐도 뻔한데, 돈은 쓸 수 있지만 격에 안 맞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나빠지고 싶지는 않으므로 가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약속 자리라거나, 아니면 정말 끼니 때라 배가 고파서라도 그냥 먹고 가자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개인적이든 아니든 약속 자리라면 더 골치아파질 수 있다. ‘직원의 콧털을 보건대 이곳의 음식이 제대로일 확률은 매주 낮으므로 먹지 않고 다른 곳에 가는 게 낫겠습니다’라는 말은 하기도 어렵다. 설사 공감대를 형성해 다른 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식욕은 떨어져 버린 뒤일 확률이 높다. 만약 음식이 맛이 없었는데 일행마저 식사 후 동의했다면 그 다음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사실은 막 들어갔는데 직원 콧털을 보고 예감이 불길했거든…’

한편 콧털의 존재를 인식한 다음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그냥 영원히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상호를 공개하며 ‘콧털 때문에라도 이곳은 맛있는 음식을 낼 가능성이 아주 낮았는데 슬픈 예감은 언제나 현실이 되듯 그러했다’라고 써야만 할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업장에 어떤 식으로든 항의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나오면서 대놓고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까? 저기 코털이 삐져나왔는데 요식업 종사자로서는 좀 신경 써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 가격대의 음식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이후에 전화를 걸까? 저기 제가 며칠 전의 방문에서 홀의 직원으로부터 콧털을… 그것도 아니면 편지를 쓸까? 안녕하세요, 귀 업장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며칠 전의 방문에서 제가 홀의 직원으로부터 콧털을… 아무래도 정중함을 강조하기 위해 손편지가 좋을까? 워드로 쓸까? 워드로 쓴다면 서명은 손으로 할까? 일반 우편이 좋을까, 아무래도 등기가 안심될까?

사소하다면 무한히 사소할 이 딜레마 속의 핵심 슬픔은,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전혀*, 아무런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매체에 레스토랑 리뷰를 쓸 때 조차, 아침에 일어나서 ‘음, 모든 것을 까발리기 위해 오늘도 무한히 예민한 감각의 인간으로 거듭나야지’라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눈을 치켜 뜬 채로 음식을 먹으러 간 적이 없다. 그게 과연 무슨 의미겠는가, 평범한 식사의 경험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질 텐데.

여러분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신경은 쓰이지만 식사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혼자서 삭이겠는가? 가능한 일이지만 만일 그게 원치 않았음에도 눈에 들어올 정도라면 삭이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아니,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단계에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다지도 사소하다 못해 자질구레한 요인이 궁극적으로는 식사의 경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과연 인정은 할 수 있는 걸까?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무관심해져도 되는 것일까? 혹자는 ‘미친놈이 또 말도 안되는 걸로 트집잡고 있네’라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과연 정말 이런 논의가 쓸데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음식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당신 눈에 안 보인다면 그건 당신의 책임일 수도 있다.

여러 방향으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결론은 당장 내릴 수 있다. 남자들이여, 코털을 자주 깎자. 설사 당신이 요식업 종사자가 아니라고 해도.

3 Comments

  • djsic says:

    세번째 문단은 정말이지..숨막히네요 ㅋㅋㅋㅋㅋㅋ

  • aCat says:

    기본이 안 된 것들이 너무나 많은 나라라서 한숨만 나오죠. 콧털이 아니더라도…… 음…… 화장실에서 손 씻기…… (깊은 한숨)

  • 안준표 says:

    콧털은.. 깎아야죠. 요식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제조업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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