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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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메밀면에 매운 양념을 끼얹었다. 그럼 막국수는 좋든싫든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동치미 국물을 “세 국자 쯤” 끼얹으라고 한다. 양념은 국물에 섞어 묽어지지만 매운맛은 그대로 남아 있다. 게다가 동치미 국물은 달다. 꽤 단데, 그렇다고 달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제대로 익었는지 발효로 인한 켜가 한 자락 진하게 깔려 있었다.

세 가지 맛의 충돌을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양 입안에서 느끼는데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이거나 그보다 더 이전의 일이다. 기억이 맞다면 롯데 본점 지하일 것이다 (아니면 신세계 본점). 간만의 서울나들이었는데 예정보다 좀 늦은 시각이었다. 종일의 갈증에 시달려 어린 아이는 ‘청량’ 음료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어머니는 거부했다.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질 거라는 이유였다. 계속 졸랐는지 결국 꼭지에서 흘러 나와 컵에 담긴 음료를 마실 수 있었지만 역시 목은 더 말랐다.

단맛이 강하게 개입한 청량음료가 사실은 청량하지 않듯, 그 수준으로 단맛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동치미를 시원하다고 여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물론 갈증이 났을때 바닷물을 마시면 안된다고 하듯, 짠맛이 강하게 개입한 액체도 시원할 수는 없다. 이러나 저러나 전부 시원할 수는 없는 가운데, 나는 과연 동치미가 뭔가 한식의 가치를 적극 수호해야 한다는 사람이라면 진저리치도록 싫어할 수 있는 청량음료를 닮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 및 인정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신맛을 식초로 모사한 김치도 있고, 이 동치미도 사실은 사이다라는 조력자를 암암리에 데려와 발을 담그도록 조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시원한 가운데 채소가 아삭거리는 물김치가 이런 수준으로 달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단맛과 짠맛의 밀고 당기기가 흡사 소금 캐러멜의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단맛과 짠맛을 이런 수준으로 아슬아슬하게 잡은 소금 캐러멜이 있던가? 그런데 어떻게 동치미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놀라운 일이다. 이건 한국의 맛이 아니다. 어설픈 서양화 및 근대화의 맛이다.

아예 작정하고 외국 음식을 끌어와야만 한다면 동치미에게는 차라리 샴페인을 멘토로 붙여주는 편이 훨씬 낫다. 탄산의 청량감이 핵심이지만 달지 않아야 식전 또는 식사 전체에 걸쳐 마실 수 있다. 동치미는 어떤 역할의 음식인가? 한식에서 국물은 어떤 역할을 맡는가? 생각해보면 동치미의 역할 모델은 샴페인이지 콜라나 사이다가 아니다.

답이 너무나도 간단한 문제인데 설명할 수 없을 이유와 수준으로 달아 빠졌으니 문제만 제기하면 되는 줄 아는 인물들에게 ‘단맛이 문제다’라는 이야기나 듣고 있는 것이다. 단맛만 문제가 아니고 짠맛도, 매운맛도 문제고, 단맛은 자리를 못 찾아 주는 게 문제다. 지향점에 대한 고민이 없으니 배척당하는 건 단맛이나 짠맛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한식 보수주의자가 지향하는 맛에 실제로 어떤 요소가 남아 있는지 생각해보자. 없다.

*사족: 양념이 기본으로 딸려 나오는 상황이라면 음식점에서는 메뉴에 이를 공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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