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그 요리 (5)-‘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와 생존을 위한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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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참혹한 여름이었다, 라고 몇 자 두들기는 손가락 사이로 땀이 줄줄 흐른다.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그토록 참혹한 여름이었다. 9월은 그래서 더 괴롭다. 마음으로는 여름이 갈 것만 같은 달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20일까지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서늘한 바람을 기다리며 싸늘한 계절의 이야기를 읽었다.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다. 비단 계절만 싸늘한 것도 아니다. 몸도, 마음도 모두 싸늘하다. 뼛속까지 시리다는 말이 적확하겠다. “날씨가 좀 풀려서” 영하 18도인 땅의 수용소 이야기인데다가, 체험담이다. 솔제니친은 대위로 군복무 중 반소 혐의로 8년 동안 수용소에 복역했다. 그 기간의 경험을 바탕과 기둥 삼아, 그는 스탈린의 압제에 시달린 소련의 현실을 문학으로 고발한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그의 첫 작품으로 1962년 발표돼, 문학 및 사회적 가치를 인정 받아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필부라는 명칭이 딱 들어맞는 이다. 시골에서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삶을 살았을 뿐인데, 전쟁통에 징집된 게 싸늘한 나날들의 시발점이었다. 전선에 투입되었다 독일군에게 붙잡힌 것.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조국은 이런 그에게 오히려 스파이 혐의를 뒤집어 씌운다. 그의 고지식함도 도움은 못 됐다. 딱 둘만 남은 생존자였기에 ‘길을 잃고 헤맸을 뿐’이라 둘러대면 그만이었을 것을, 곧이곧대로 포로가 되었노라고 털어 놓아 문제가 커졌다. ‘수용소 스튜 건더기인 생선의 눈깔이 대가리에 고이 붙어 있으면 먹고, 따로 떨어져 나와 국물에 덩그러니 떠 있으면 안 먹어 다른 수감자에게 놀림감이 되는’ 고지식함이다. 결국 그는 근거도 없는 반역죄로 10년 노역형을 선고 받는다.

이런 사회 및 물리적 환경 속에서, 음식은 참으로 모순적인 방식으로 중요해진다. 너무나도 초라하고 조악하지만 그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해지는 것이다. 뼛속까지 시린 강제 노역의 현실 속에서 음식은 문자 그대로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 심지어 슈호프가 어린 시절 말에게나 먹였던 귀리조차 귀해 죽으로 잘 나오지 않는 현실, 양식의 기본인 빵이라고 멀쩡할 수 없다. <이반 데니소비치>에서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당시 수용소의 현실을 금방 살펴볼 수 있다. 기본 배급품은 호밀빵이다. 요즘이야 건강빵이라며 통밀이나 호밀을 선호하는 추세지만, 이 시대에는 궁여지책이었다. 겨의 효소가 효모를 공격해 발효가 잘 안 되니 뻣뻣하고, 특유의 군내도 난다. 요즘이야 반죽을 오래 불리는 등 통곡식의 어려움을 극복해 빵을 굽지만, 그 시절엔 그랬을리 없다. 게다가 그마저도 넉넉치 않아 보리, 메밀까지 섞었다고 한다. 빵이 빵이었을리 없다. 이를 뒷받침하듯, 작품 막판 등장 인물들은 포로 받은 러시아 빵(Батон)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길고 하얀데다가 속살이 부드러운, 모스크바에서 온 진짜 빵이다.

이렇게 열악한 현실 속에서 소금에 절인 돼지비계가 고급 음식 행세를 한다. “반 킬로, 아니 일 킬로 정도”는 간수에게 갖다 바쳐야 반 전체를 쉬운 작업장으로 돌려주는, 뇌물 역할까지 맡는다. 가뜩이나 춥고 팍팍한 현실인지라, 돼지 비계는 소설 속에서 예상 이상의 푸근함을 안긴다. 아무래도 지방, 기름이기 때문이다. 유럽에는 절인 비계를 먹는 문화가 존재하는데, 지방이 맛의 매개체임을 감안하면 자연스럽다. 우리가 즐겨 먹는 삼겹살도 비계를 떼어내고 먹으면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반이 넘는데다가, 남은 살은 퍽퍽하기 때문이다. 러시의 절인 비계는 살라(Сало)라 부르며, 전통 음식이다. 지방을 소금에 절이거나 염지액에 담가 발효 숙성시켰으니  장기 보관에도 적합하다. 얇게 저며 호밀빵 위에 얹어 보드카를 곁들여 그냥 먹기도 하지만, 국물 음식에 두터움을 불어 넣거나 소시지 속을 채우는데도 쓰인다. 주변 동유럽 국가 전역에 걸쳐 먹고, 이탈리아의 라르도(lardo), 프랑스의 라르동(lardon)도 같은 음식이다.

2 Comments

  • Passerby says:

    저는 소시지를 먹다가 식욕이 별로 없으면 이 책을 폅니다. 후반부에 체자리에게 소시지를 하나 받아서 씹는 장면이 어찌나 맛있게 묘사를 했던지 입에 매번 군침이 돌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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