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음식 때문에 가장 슬퍼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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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5월 5일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웬만하면 외식하는 날 말이다.하지만  1인 가정이거나 아이가 없거나 등등의 경우도 있으므로 나는 오늘이 한국에서 음식 때문에 가장 슬퍼지는 날이라고 믿는다. 일단 케이크부터 너무 슬프다. 설사 케이크를 안 먹는 사람이라도 오늘 만큼은 사거나 구매를 적극 고려할 텐데, 웬만하면 프랜차이즈고 아니면 그만큼 열악해서 딱히 메리트가 없는 소위 ‘동네 빵집’이 거의 전부다. 그 안에서도 선택은 물론 전혀 다양하지 않다. ‘생’ 아닌 생크림 케이크거나 요즘은 맛도 없는 과일을 산더미처럼 쌓은 케이크 아닌 케이크가 주류다. 그것도 아니라면 액션 피겨나 뽀로로 인형을 사고 케이크는 덤으로 얻어야 한다.

잘 구운 제누아즈에 맛있는 버터크림을 바른, 평범하게 멀쩡한 케이크 같은 건 없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심지어 프로스팅을 옆구리에도 바르지 않은 말도 안되는 가짜 케이크가 아마도 가장 근접한 선택일 것이다. 능력 없음의 결과물인 못만듦을 소박함이나 푸근함 따위로 가리려는, 심지어 가격은 전혀 소박하거나 푸근하지도 않은 그런 케이크 말이다. 이런 게 싫다고? 그럼 어디에선가 일찌감치 예약을 걸어야 한다. 그마저도 완성도를 보장해주리라는 보장은 해주지 않는다.

음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아하거나 가고 싶은 레스토랑이 있고, 선 입금 등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예약을 했을지라도 1회전 이상의 가능성, 또는 음식이 평소보다 완성도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일정 수준 안고 가야 한다. 그럼 DIY로는 해결이 가능할까? 일단 노동력의 투입 자체가 그다지 즐겁지 않지만, 감수한다고 쳐도 케이크나 음식 만큼이나 선택의 폭은 다양하지 않다. 몇 년 동안 겪어 왔으므로 올해는 DIY조차 대폭 축소했지만 그마저도 식재료를 구하기는 번거로운 일이다. 재료만 구하면 오히려 요리는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바질을 사고 싶었으나 심지어 하루를 버틸 수 없을 만큼 시들어서 피했고, 대안으로 생각했던 이탈리안 파슬리마저 빈사 직전이라 내려 놓았다.

이 모든 건 크리스마스가 서양의 풍습이면서도 완전한 국내의 휴일이라는 점에서 한층 더 두드러진다. 없지는 않겠지만 웬만해서 크리스마스에 시루떡을 먹고 불고기를 구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기원이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일정 수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말하자면 서양의 것인 케이크도 먹고 싶고 양식도 즐기고 싶다. 그런데 선택권도 별로 없으며 이렇게 잠깐 불어나는 수요 때문에 현존하는 것의 완성도 또한 일시적으로 더 떨어질 것을 예상 및 감수해야 한다.

어제 장을 보러 갔다가 정말 흐리멍텅한 분홍색의 딸기가 너무나도 ‘크리스마스 스피릿’ 같다고 생각했다. 즐기고 싶지만 없다. 있는 것도 그저 그렇다. 딸기가 꽤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가끔 풍기듯 때로 멀쩡해보이는 게 있는데 사다가 갈라보면 또 그렇지 않다. 더 불쾌해지지 않기 위해 있는 것에 억지로 최면을 걸어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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