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음식 글

왠지 따뜻한 음식 글 한 편 올려야 할 타이밍 같아 클라우드를 뒤져 한 편을 끌어 올렸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하다면 이번 주 내로 이어서 하겠다. 아무리 찾아도 김밥이 안 나와서 탕수육 사진을 올린다. 물론 글과 전혀 상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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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묘미는 누가 뭐래도 반전이다. 소설이며 영화 각본 모두 마찬가지다.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영화는 그 특유의 반전으로 인해 인기를 누려 가히 ‘반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영화를 찬찬히 뜯어보면 반전의 존재 유무보다 ‘타이밍’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터뜨리는 순간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너무 빨리 터뜨리면 반전 이후가 재미없고, 너무 나중까지 아껴두면 ‘스포일러(“절름발이가 범인이다!”)’로 쓴맛을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신영 김밥의 이야기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 속했다. 이야기가 반전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 저희는 지난 5월부터 인수받아서 시작했으니 이제 약 8개월 밖에 안 되었어요. 이전 주인이 이십 년 넘게 했던 건 맞고요.”

8개월이라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반전이란 말인가. 작년 봄, 우연히 신영김밥을 발견한 이후 필자는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려왔다. 강남은커녕 서울 사람도 아니기에 몰랐지만 사실은 ‘강남 김밥의 양대 산맥’이라는 정보를 그 동네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으로부터 듣고, 속이 꽉 찬 김밥만큼이나 세월을 꼭꼭 말아 담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랬건만, 8개월이라니? 이야기를 듣고 순간 망설였지만 그래도 취재를 강행하기로 한 건, 김밥에서 여전히 풍겨 나오는 세월의 흔적 또는 내공 때문이었다. 김밥집을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원형 또는 원조의 세월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진 마당에 그 세월의 실체가 무엇인지라도 속 시원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물을 안 부으면 밥 짓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새로 지어서 따뜻한 김밥을 말아 내야 되니 시간을 아껴야죠. 사실 너무 따뜻한 밥으로 김밥을 말면 채 안 나간 ‘김’ 때문에 ‘김’이 눅눅해질 수 있지만 손님들은 따뜻한 김밥을 좋아하시니까 거기에 맞춰야죠.”

준비를 시작한다는 새벽 네 시 반, ‘한창 준비하는 아침 시간에는 놓치는 게 있을까 두려워 말을 많이 안 할 수도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안주인 노은미 씨와 가장 먼저 입에 담은 이야기는 역시 밥에 관한 것이었다. 내공의 기초는 재료, 그리고 재료의 기초는 당연히 밥이다. 알갱이가 살아 있어 씹는 맛이 좋은 밥, 처음 신영 김밥을 먹었을 때 가장 인상적인 요소였다. ‘밥심’으로 사는 민족이라지만 밥이 맛있는 식당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는 요즘이기에, 밥의 존재는 더욱더 두드러져 보였다. 그 밥에 이끌려 취재하고 싶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미국 애틀랜타로 건너가 10년 조금 넘게 스시집, 횟집 등을 꾸렸었는데 친정 엄마가 많이 편찮아지셨어요. 너무 많이 고민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죠. 여러 가지를 고려했는데 친척을 통해 신영김밥 이야기를 듣고 인수하기로 했어요. 예전 주인이 인수인계를 꼼꼼하게 잘 해줬는데, 막상 김밥을 만들어 보니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저의 맛을 추구하기로 했죠. 원래 좋았던 쌀과 김만 빼놓고 모든 재료를 처음부터 다시 선택했어요.”

끓는 물 덕분일까, 창 쪽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는 다섯 대의 압력솥이 금세 김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그 사이 노은미 씨는 계란을 준비한다. 그냥 ‘계란’이라고만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납작한 지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저어 공기를 섞어주면, 계란은 베이킹파우더나 소다가 없이도 부풀어 오른다. 대부분의 케이크에 바탕이 되는 스폰지 케이크, 또는 ‘제누와즈(Genoise)’나,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양과자 ’마카롱(Macaron)’이 계란과 공기가 만나 이끌어내는 폭신한 조직의 좋은 예다. 진한 노란색으로 싱싱함을 자랑하는 노른자의 계란 150개가 순식간에 커다란 대접에 담기고, 거품기도 아닌 뒤집개(“거품기로 섞으면 너무 많이 부풀어 올라요”)에 한데 섞여 은은한 불 위에 올린 팬으로 향한다. 중간에 한 번 뒤집어 넉넉하게 부풀어 오른 계란은 겹겹이 쌓여 식으면서 살짝 꺼져, 깁밥의 무게중심을 잡기에 딱 알맞은 두께가 된다.

“음식에는 무엇보다 소금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밥의 간도 신안에서 나오는 구운 소금으로 맞춰요.” 다 지은 밥은 바로 넓은 대접에 옮겨 소금과 참기름으로 넉넉하게 간을 한 뒤, 다른 재료와 함께 ‘달인’급의 아주머니들 손으로 향한다. 20년 경력에,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방송에서 달인으로 출연 섭외가 들어왔지만 마다했다는 솜씨다. 원래는 좌식이었지만 작업 환경을 생각해 입식으로 바꿨다는 작업대에서, 2인 1조의 빠른 손놀림이 김과 밥으로 멍석을 깔고 그 위에 계란, 우엉, 시금치, 단무지 등을 착착 말아 쌓는다. 그걸 노은미 씨는 참기름을 잘 바른 기계로 대여섯 줄씩, 한꺼번에 잘라 한 줄씩 은박지로 포장한다. 그 와중에 양 끝으로 너무 많이 튀어나와 보기 싫은 당근까지 골라낸다.

참기름으로 이미 반질반질 윤나는 김밥이 그보다 더 반짝이는 은박지 옷을 입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곧 은박지 자체가 눈에 들어온다. 분명히 두루마리에서 사람 손으로 한 장씩 자른 것 같은데 구김 하나도 없는 것은 물론 수십, 수백 장이 모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같은 크기로 재단되어 한 장씩 뽑아 쓸 수 있는 은박지도 있는 걸 알고 있기에 처음에는 그건 줄 알았지만, 양 끝의 톱니 자국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사람 아닌 귀신의 손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정확함이며 꼼꼼함이다.

그렇게 김밥보다 은박지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어느덧 여섯 시 반, 신영김밥의 바깥주인 최태현 씨가 등장한다. 아침식사 배달 주문을 따로 챙겨 상자에 담고 여며 테이프를 붙이는 손길이, 누가 바로 저 은박지의 장본인임을 알려준다. 상자에 쓰는 수량이며 배달처의 글씨체며 획순을 보니 영락없다.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군복무 시절 발표용 자료의 글이며 그림을 담당했던 ‘차트병’이었단다. 감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꼼꼼함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미국에 건너가기 전, 한 반 년 정도 스시집에서 일하며 배워서는 직접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좋은 생선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예닐곱 시간 걸리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물론, 쉬지 않고 꼬박 스무 시간 운전해야 되는 뉴욕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원래 음식에 관심이 많아 맛있는 집이라면 찾아다니며 먹는 것도 즐겼습니다. 그 두 가지의 열정을 한데 엮어 김밥 속 재료를 새로 찾는데 원동력으로 썼습니다. 마음에 드는 재료가 나타날 때까지 가락동 농산물 시장을 누비고 다녔죠. 지금도 쓰는 재료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또 시장으로 달려갑니다.”

대부분이 16 ‘미크론(μ)’이지만 종종 있는 18미크론짜리가 두꺼워 쓰기 좋다는 요지의, 은박지에 관한 전문가식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노은미 씨가 갓 말아 온기가 그대로인 김밥을 내놓는다. 김의 감칠맛과 탱글탱글한 밥의 고소함이 멍석을 깔고, 그 위로 계란의 부드러움과 당근이며 우엉, 시금치의 아삭함이 한데 어우러진다. 그 위로 새콤한 단무지가 단조로움을 덜어주니,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든다. 같은 재료를 같은 양만큼 따로따로 입에 넣어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맛, 김밥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갖은 재료의 준비가 번거로운 것은 물론, 반드시 손으로 완성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만들기 어려운데다가 저급 재료의 남용까지 겹쳐, 이제 김밥의 매력도 아무데서나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좋은 재료를 바탕으로 정성을 쏟아 만든 이 한 줄의 김밥이, 어린 시절 소풍에서 그걸 정답게 나눠 먹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이유다.

“손님이 있으니까 쉬는 날 없이, 일주일 내내 문을 열어요. 대신 아주 가끔 짬을 내서 동해안, 속초로 2박 3일 정도 여행을 가곤 합니다.” 다시 밥솥에 쌀을 안치며, 노은미 씨가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귀띔해준다. 부부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들보다 나름의 안목과 미각으로 찾은 선택을 즐긴다고 하니 언젠가 맛있는 김밥은 물론 덤으로 바다 이야기를 담아 오리라, 마음먹었다.

1 Comment

  • Jediwoon says:

    밥에 신경쓰는 김밥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어릴적, 벌써 30여년 전이지만 그때 먹던 김밥맛을 어느순간 찾을 수 없었는데
    꼭 맛보고 싶어지네요.

    덤으로 글을 읽으며 새벽 압력솥 증기와 음식 소리로 가득한 공간이 상상이 됩니다.
    정말 따뜻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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