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드레스코드, 메뉴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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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저녁을 먹고 2차로 바에 갔다. 그도 초행이라 했다. 자리는 있었는데 드레스코드에 의하면 남성의 경우 깃이 없는 옷을 입을 경우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직업적인 이유에서라도 이런 경우라면 대부분 토를 달지 않고 자리를 뜬다. 다만 양해를 하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그 사이에 일행이 잠깐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바 측은 규정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모양이었는데 나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조금이라도 약점 잡힐 일은 하고 싶지 않으며 정말 궁금하면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굳이 아쉬울 건 없었다. 다만 바는 레스토랑과 조금 다를 수 있어서 사전조사를 철저하게 안 하고 갈 수도 있고(아마 혼자였다면 상황이 좀 달랐겠지만), 규정을 이해는 하지만 깃만 없다 뿐이지 올 여름에 샀던 것 가운데 가장 좋은 옷차림이었던지라 그게 좀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어쨌든 규정은 지켜야 한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성인이 대상이므로 ‘노키즈 존’과는 다른 문제다. 노키즈 존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 참조)

이후 깃이 달린 옷-셔츠-를 일부러 찾아 입고 몇 번 들렀다. 훌륭한 바였다. 넓혀 놓은 기주의 공간을 드러나지 않는 듯 세심하게 채워주는 칵테일이랄까. 동선만 맞는다면 언제라도 들르고 싶은 바인데, 마지막 방문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깃 없는 옷-저지-을 입은 남자 손님이 나서는 걸 보았다. (나머지 옷차림도 이런 종류의 드레스코드를 규정하는 바와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물을 특정할 수 있으므로 여기까지만) 흠. 혹시 이 바를 가게 될지도 몰라서 일부러 셔츠를 다려서 입고 나왔는데…

그래서 억울하다는 말인가? 아니다. 분명히 재방문 의사가 있고 다음에도 나는 깃이 달린 옷을 챙겨 입고 갈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 손님 또한 그냥 입장만 했다가 바의 규정을 알고 자리를 뜨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1. 규정이 있다면 확실하게 지키는 게 맞으며 2. 한국에서 그 규정의 준수는 상당 부분 아직도 손님의 몫으로 남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유가 있으니까 규정을 정해 놓았을 테고, 거의 대부분 이런 종류의 요식업장에서는 준수를 완전히 강제할 수 없다. 결국은 알아서 지켜야 하고, 그것은 손님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메뉴에 대해 사족 하나만 붙이자. 말했듯 이곳의 칵테일은 훌륭한데,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얘기가 잘 된 것 같은데 결론인 칵테일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나온달까.  이곳도 메뉴가 없고 원하는 맛이나 주종 등을 말하면 만들어 주는 시스템을 적용한다. 물론 메뉴 없이 운영하는 바는 많고 그 자체도 바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일종의 매력이라고 생각은 한다. 다만 충분히 대화를 나누기에는 좀 쫓기는 바쁜 시간대라거나, 요구사항의 묘사가 추상적인 경우 등이라면 결과가 모두가 바라는 만큼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수많은 변용의 가능성을 메뉴에 담아봐야 가독성이 떨어지고, 되려 메뉴의 부재와 똑같은 방식으로 부담감을 줄 수 있다. 이에 대비해 가장 기본적인 칵테일의 분류법을 일종의 시각적인 자료로 만들어 두는 건 어떨까. 이를테면 기주(위스키/진/보드카 등등), 맛(단맛/신맛/쓴맛 등), 세기(술이 많이/적게 들어감), 경우(식전/식후주) 등등 분류의 기준은 다양하다. 말하자면 무수히 뻗어나갈 수 있는 가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뿌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자료랄까. 물론 이런 일이 개별 바의 과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소위 ‘협회’ 같은 존재가 공통적으로 만들어 돌려야 할 종류다.

5 Comments

  • Mr.Jin says:

    결국 그 깃 없는 옷을 입은 손님은 업장의 정책에 대해 ‘손님은 왕이다’ 로 대응해서 결국 술 한 잔 마시고 간 모양이네요.
    결국 업장의 규정을 준수할 의지가 있는 손님만 ( 규정에 동의 여부를 떠나 ) 규정을 지키게 되는 상황이네요.

    • sneaker says:

      본문에도 적혀있지만 그 깃없는 양반이 가게 규칙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 Steppenwolf says:

    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쓰신 책 두 권 포함해서요 🙂
    다만,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가셨다는 바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훌륭하다고 평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바를 무척 좋아하다보니… 많이 궁금하여 참지 못하고 여쭤봅니다.

    • bluexmas says:

      바를 좋아하시면 이미 아시는 곳 가운데 한 군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요.

  • sneaker says:

    경복궁역 인근 바 중 하나일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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