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 생태탕의 현대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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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생태탕을 먹었다. 어떤 음식점인지 딱히 중요하지 않다. 지금이 생태철인가? 물론 고민할 수 있지만 그 또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대야에서 한참을 펄펄 끓고 나면 점원이 집게 두 점을 들고 온다. 한 집게로 단단히 잡고 다른 집게로는 살을 사정없이 훑어낸다. 과조리된 흰생선살이 뻘건 국물 속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덩어리로 먹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태든 동태든 아깝다. 너무 부스러져 국자로 건져내기도 영 쉽지 않다. 불도 뜨거우니 적극적인 낛시질(?)도 어렵다. 지방의 흔적을 1도 느낄 수 없는 국물이 생각보다 괜찮았기에 한결 더 아숴웠다. 꼭 이렇게 먹어야 할까.

물론 이렇게 대야에 펄펄 끓이는 음식점에 하루 아침에 생각을 달리 먹고 뭔가 다른 형식의 생태탕-이든 어떤 종류의 생선 국물 요리든-을 낼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음식은 그냥 이렇게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음식이 최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형식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식탁에서 펄펄 끓인 뒤 살을 과조리해서 남김없이 훑어내는 방식이 흰살생선을 맛보는 최선의 방법일까? 뜨겁고 맵고 생선은 온데간데 없다. 그럼 과연 누군가 음식과 요리의 영역에 속하는 이는 이런 생선탕을 먹으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걸까? 과연 뜨겁고 매우며 생선을 찾기 어려운 이 음식의 현상태는 문제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전자와 후자의 사고 불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심각한 문제인지 얼핏 가늠하기 어려운데, 어쨌든 길은 있다고 믿는다.

0. 대야의 퇴출: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1. 개인화: 현대화의 또 다른 이름은 개인화다. 1인 1그릇, 중심 재료의 적절한 분배가 필요하다. 시각적으로도 ‘내 몫을 내가 먹는다’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2. 국물의 켜와 두께 확보: ‘감히 시원함이 생명인 생태탕에 지방을!’이라고 격노할 이들이 있을 것이므로 감히 지방, 특히 동물성 지방을 촉탁하자는 제안은 못하겠다(집에서는 그렇게 끓여 먹지만…). 그렇다면 젤라틴이라도 좀 더 확보할 수 없을까. 매운 정도에 비해 국물이 너무 얄팍하다. 물론 젤라틴은 바다 재료에서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 물론 진짜 문제는 매운맛 그 자체라고 믿는다. 굳이 섬세한 흰살생선을 고춧가루 국물에 파묻어야 할까? 그것도 그냥 육수에 고춧가루를 부어 만든 국물이다. ‘(국산) 고추로 맨든 굉장히 귀한 가루’의 맛을 제대로 피워내지도 않았다.

3.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국물: 1의 연장선 상에 있지만, 국물이 그렇게 좋다면 국물만 편하게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가.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끓이면 온갖 재료들이 똑같은 상태로 익어 국물에 뒤섞여 버린다. 국물 한 숟가락 떠먹기 위해서 곤죽이 되어버린 파, 생선 가시, 설컹거리는 무 등을 헤쳐야 한다. 항상 끓고 있으니 뜨겁다는 사실은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아도 입이 아프다. 국물에 맛을 불어 넣어 주는 재료와 국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재료는 다르고 구분되어야 한다. 파나 쑥갓 같은 한식 생선 국물 요리의 채소가 진짜 맛이 있다면, 그 자체를 먹을 수 있는 조리의 시기나 강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4. 중심 재료의 적절한 조리: 흰살생선을 너무 익힌다. 조리의 시간도 시간이지만, 굳이 끓는 국물에 처음부터 끝까지 익힐 필요가 있을까. 은근히 삶기(poach)의 온도(71~85 °C)에서 짧은 시간 안에 익힐 수 있다.

그래서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은 발상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생선을 손질해 포를 뜬다-뼈와 대가리 등을 부재료와 함께 은근히 끓여 육수를 낸다-일부를 덜어내 생선살을 은근히 삶는다-건진 뒤 먹을 채소를 소량 더해 익힌다-사발 등에 익힌 생선살과 채소를 담고 국물을 붓는다. 심지어 식탁에서 국물을 부어 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혹자는 그렇게 만들면 그게 생태탕이냐, 소줏간 놓고 펄펄 끓이면서 나눠 먹어야 제맛이지- 등등이라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런 음식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차피 그런 음식은 없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윗쪽이다. 가격이 비싸질 만큼 음식의 가치를 과연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금테를 두른 생태를 끓여 낼 것도 아니잖는가.

어느 지점에서 한식을 고급화 및 현대화한다고 시도하는 이가 있다면, 그리고 그런 이가 프랑스를 비롯한 현대 요리를 공부했다면(독학이든 도제든 교육기관을 거쳤든) 자신이 배운 이론 및 실기와 한국 요리의 특성이 교차하는 좌표에 대해서 고민할 것이라 본다. 그럼 이런 일상 및 대중 음식의 변화에 대해서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발상이든 실행이든 결코 어렵지 않으며 무주공산인데다가 백지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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