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생” 크림 케이크 테이스팅 워크숍 후기

IMG_8385워크숍 당일 오전 11시쯤, 머릿속으로 진행 순서며 말할 내용 등등을 정리하는데 문자가 왔다. 주최측인 워크스였다. 케이크 하나가 “매장의 사정”으로 판매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었다. 그 매장은 가장 비싼 맛보기 샘플로 선택한 것이었고, 주최측에서 일괄적으로 1주일 전에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고급 축에 속하는 물건을 일주일 전에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살 수 없다고? 주최측에 물어보지 않았지만, 매장에 가서 연락을 한 걸로 미루어 보아 미리 연락을 준 상황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사과의 뜻으로 다음 구매를 위한 할인권 같은 걸 주지도 않았으리라. 나는 급하게 문자를 보내, 바로 근처의 특급호텔 베이커리에 비슷한 수준의 샘플이 있으니 그걸 사면 진행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사온 케이크는, 상자에서 꺼내자 이미 상층부 절반이 하층부로부터 미끄러져 분리되어 있었다. “딸기” 케이크이기 때문에 구조적인 고민 없이 표면에 얹은 딸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가장 비싼 것을 예약까지 했음에도 예고 없이 살 수 없었고, 그 대타로 구한 비슷한 수준의 케이크는 들고 오는 사이에 무너졌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넘쳐난다는 생각을 대체 지울 수 없었다.

IMG_8384논의는 일찍 시작했다. 기억하기로 약 50일 전에 워크스와 ‘과자전’의 사전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이야기를 나눴으며, 반응이 좋다면 정기적-2달에 한 번쯤?-으로 진행하자는 이야기도 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이미 몇 년 전의 대학원 수업에서 매주 진행해 익숙한 나는, 무엇보다 가장 일상적인 디저트를 골라 가격 등등으로 나누어 구해 한꺼번에 시식하고 그걸 통해 패턴을 읽는 과정을 체험하자고 제안했다. 디저트는 가장 인위적인 음식이기에 딱히 철의 구애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선택시 고려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번째 대상으로 고른 것이 딸기 생크림 케이크였다. 몇 번의 협의를 통해 가격, 그에 영향을 받거나 또 받지 않는 수준, 그 외 별도의 이유(또는 차별성) 등을 감안해 일곱 가지의 서로 다른 브랜드 케이크를 골랐다.

그리고 워크숍 당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꺼내 갈라본 케이크들은 브랜드와 가격에 크게 상관없이 비슷했다. 일단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다지 예쁘지 않고, 갈라보면 크림과 케이크의 켜가 고른 경우도 많지 않았다. 그나마 이유가 있어서 포함시켰던 두 케이크, 즉 의도적으로 켜 안에 생딸기를 배제시킨 것들이 그나마 더 고른 켜를 보여주었다. 그나마도 겉에는 이것이 “딸기” 케이크임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인지 생딸기를 올려 놓았다. 차라리 케이크 자체를 딸기 모양새와 색깔로 만드는 편이 더 “딸기” 케이크 같아 보이지 않을까. 맛의 설계 뿐만 아니라 소위 representation의 측면에서도 생딸기를 그냥 올려 놓는 접근은 가장 무난하면서도 게으르고 또 한 편 무지하다.

IMG_8382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판매처에서는 이런 방식만을 고수한다. 상자에서 꺼내고 갈라서 속을 살펴보고 나면, 사실 맛의 측면에서 크게 할 이야기가 남지 않았다. 이렇게 만든 케이크가 맛있다면 오히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물론 워크숍 사전에 물색한 후보들을 먹은 소감도 일치했다. 설사 잘 만들었다고 쳐도 부드러운 크림 및 케이크-잘 만들었다는 이상적인 전제 아래-가 물컹거리는 딸기는 일단 질감 측면에서 잘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의 딸기는 맛이 입에 넣자마자 점으로 응집-이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되었다가 사라지는데, 딸기 부페 등에서 과시하기 위해 내놓는 생식용은 단맛이, 케이크 등에서 쓰는 작은 것들은 신맛이 잠깐 반짝한다. 그나마 희망적일 수 있는 신맛이지만 너무 빨리 사라져 버린다.

IMG_8383워크숍을 마치고 현타가 밀려오는 머리로 돌아다니며 딸기 생크림 케이크에 대해 곱씹었다. 돌이켜 보니 이 케이크는 그 자체로 디저트의 영역에서 일종의 굴레 역할을 한다. “딸기”와 “크림”이 “생”이라는 기표(??)에 강하게 얽매인다. 어쨌거나 디저트는 태생이 인위적인 음식이다. 밀가루와 설탕 등의 가루로 덩어리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계란이나 기타 재료로 공기를 불어 넣어 부피와 부드러움을 확보한다. 그 과정에서 원하는 모양을 단백질에 비해 자유롭게 빚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특성의 대부분이 “생”이라는 기표에 침해당한다. 딸기와 크림 모두 디저트에서 그다지 장점일 이유가 없는 “생”의 상태를 강박적으로 지켜야 한다. 그래서 설컹거리는 딸기의 과육이 시트와 크림의 켜 사이를 침범하며, 모양이 오래 유지되지도 않을 뿐더러 맛도 썩 풍부하지 않은 크림이 케이크의 겉과 속을 아슬하게 얽는다. 그러니까 식물성 크림을 섞으면 된다고? 애초에 생크림이라는 걸 안 쓰면 될 일이다.


“생”이기 때문에 생크림만 크림인가. 내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놓고 가장 아쉬워하는 점이다. 태곳적에 버터크림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물론 버터 없는 버터크림이었다. 마치 촛농처럼 미끌거리고 딱딱한 이 크림에 사람들은 기겁했고, “생”크림이 등장하자 밀려 사라졌다. 덕분에 진짜 버터를 써서 만들 수 있는 버터 크림은 아예 자리조차 잡지 못했다. 그리고 “생”크림 케이크가 아니면 이제 프로스팅을 적절히 해서 케이크 전체를 감싼 종류를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되었다. 굳이 돈을 주고 먹을 필요가 없는 소위 “가정식” 케이크의 세상이 된 것이다. 결국 말하고 싶은 건? 다양성의 징조인 듯 보이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퇴보의 홍위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대체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50,000원짜리 특급 호텔의 케이크가 먹기도 전에 쓰러진다.

5 Responses

  1. ssej says:

    생산자도 노쇼가 가능한 어메이징 코리아… 미트볼 굽는 연계 동영상으로 정신 수습하고 갑니다.

    • bluexmas says:

      저도 엄청 놀랐습니다. 누군가의 생일 등등 귀중한 날을 망칠 수 있는 거죠.

  2. Renaine says:

    딸기생크림케이크를 편집증적으로 좋아하는 나라에 살다 보면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먹을 기회가 많은데 오늘 꽤 맛있는 걸 먹었어요. 후쿠오카산 브랜드 딸기와 어느 목장에서 가져온 생크림으로 만들었다고, 심플하다 못해 심심해 보였는데 어디 하나 걸리는 부분 없이 넘어가는 케이크였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한 번 드셔보세요. (Foundry 라는 곳입니다)

    • bluexmas says: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얼마든지 맛있을 수 있죠^^ 꼭 먹어보겠습니다.

  3. rexdu says:

    안녕하세요, 평소 팬이었는데 처음으로 리플을 남겨 봅니다.

    딸기가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라는 것이 케이크라는 음식 장르에 있어서 하나의 원형이 되다시피 했다는 점에서 보면 딸기를 올린다는 행위는 필수불가결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각적인 측면이 중요한 케이크의 특성 상, 하얀 케이크 위에 있는 붉은 딸기는 저항하기 힘든 유혹이기도 하니까요. 구조적인 고민?이 없었다는 생각은 공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