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꽃

IMG_8306왜 피를 뽑으러 가는 날은 대개 궂을까. 그것도 무려 월요일이라니. 금식한 발걸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말하자면 마음의 준비를 좀 하고 갔다. 선생님이 유난히 모니터를 오래 들여다 본다고 느꼈다.

돌아오는 길엔 비가 꽤 내렸다. 나온 김에 장을 봐서 양손이 무거웠으나 꽃을 꼭 사고 싶었다. 늘 지나는 길에 보아둔 곳이 있었는데 정확히 꽃집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었다. 가보니 카페를 겸하는 곳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이번엔 반드시 노란 꽃을 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장미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물어보니 프리지아도 있다고 했다. 이번엔 다른 꽃을 사고 싶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이 들었는지 정확히 모르는 가방을 오른어깨에 메고, 돼지 뒷다릿살 덩어리 2kg와 딸기 1kg이 든 에코백을 왼손에 들고 꽃과 우산을 한꺼번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커피를 한 잔 샀다. 그러니까 꽃과 우산과 커피잔을 한꺼번에 오른손에 쥐고 집에 돌아왔다. 그 짐을 들고 한참 걸었더니 땀이 나서 차가운 커피를 사왔으나,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후회했다.

그리고 저녁에 데치기 위해 청경채를 등분하다가 칼로 손가락을 가볍게 내리쳐 또 피를 보았다. 오전에 바늘로 찔렀던, 같은 왼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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