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ravel

IMG_8008unravel: begin to fail or collapse.
-“his painstaking diplomacy of the last eight months could quickly unravel”

“그러니까 5년 전에 나는 하라 도넛을 사러 명동에 나갔다가 약속 시간에 30분쯤 늦었고, 그 연쇄 반응으로 모든 것이 폭발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하필 도너츠 때문에.”

라고 나는 어제 이맘때쯤 쓰고 있었다. 왠지 쓰고 싶었다. 그럴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unravel’이라는 단어는 좋다고 느끼는 어감과 정반대로 불길한 뜻을 품는다. 그래서 충동을 느껴 쓴 뒤 후회한다. 아니면 아예 정반대로 악랄해지고 싶을때 써먹는다. 내밀어 쿡 찌른다. 기억이 맞다면 ‘스쿨 오브 락’의 초반에서 교장(조안 쿠색)이 저 단어를 써서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억이 맞다면. 하여간 바로 그런, ‘unraveling’의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모든 계획은 결국 실패했다. 그래야 마땅했다. 무엇보다 수단과 방법이 아주 나빴다. 결국 다 나빴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 문장을 쓰고 나는 귀찮아졌다. 쓸 마음이 가셔버렸다. 최근 우연히 읽은 톰 히들스턴의 인터뷰도 떠올랐다. 모든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다. 모든 이야기를 팔아야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팔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쓰면 팔겠다는 의향을 일정 수준, 나도 모르게 깔고 들어가는 상황일 수도 있다. 이제는 내보내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 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 언제나 나를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만 뒀다. 일을 아예 손에서 놓지는 않았지만 마치 여유를 가진 사람처럼 하루를 살았다. 코스트코에서 물과 카라카라 오렌지, 그리고 딸기를 사왔지만 과일은 둘 다 맛이 없었다. 싱거웠다. 그래도 평온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개인 차원이든 아니든,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하다고 간주해도 무방한 시대를 살고 있다. 잠시잠깐 행복을 느낄 때마다 이건 또 어느 미래를 담보로 끌어온 것인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만하든 하지 않든, 미래라는 개념 자체가 남아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끝이기 때문에 비참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끝은 반드시 비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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