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의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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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차 우래옥에서 불고기를 굽고 후식으로 오렌지를 받았다. 하찮을 수도 있는 과일 한 쪽을 놓고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1. 한식의 디저트 문화는 척박하다: 우래옥의 불고기는 싸지 않다. 일단 구우면, 냉면으로 마무리한다고 가정할 때 1인 기본 5만원 안팎은 써야 한다. 그래야 후식이라고 받을 수 있는데 과일 한 쪽이다. 우래옥이 딱히 떨어진다고도 볼 수 없다. 그나마 안 내는 곳도 많다.

2. 디저트로서 생과일, 더 나아가 오렌지: 예전에 일식 셰프가 ‘일본에서는 그 자체로 완성되었다는 생각에서 생과일을 디저트로 내는데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대체로 서양의 시각에서 ‘디저트는 인위적인 음식’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알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조금 싱거울 수 있지만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가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일본에서 과일을 먹어보면 대체로 다른 음식처럼 좋게 말해 맛을 엄청나게 다듬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런 수준의 맛이라면 디저트 자체의 맥락, 더 나아가 음식 전체를 놓고 고려하더라도 결이 크게 어긋나지 않을 수 있다. 이를테면 아주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생과일-양갱(또는 모치 등등의 가루를 굳혀 만든 인위적인 디저트)-차’ 같은 조합이라면 단맛의 강도 또는 층위나 질감의 결, 차의 쓴맛 등이 맞춰 주는 균형 등의 조합엔 무리가 없다.

다만 이를 그대로 들여와 한국의 고급 한식집에서 과일 한 쪽을 달랑 내거나, 아니면 타르트나 케이크에 생과일을 잔뜩 쓴다면 그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과일이 그만큼의 구체적인 맛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되려 그렇기 때문에 난 다른 과일도 아니고 하필 오렌지가 나왔다는 사실에 은근히 반가웠다. 한국은 아니더라도 철의 범위 안에 들기도 하지만, 신맛이 잘 살아 있어 일반적인 한식을 먹고 난 뒤에 그야말로 입가심으로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수박이 나오고 겨울에는 기억이 맞다면 배가 나올텐데, 국산이지만 되려 균형 깨진 단맛 등으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과연 이것이 맛까지 고려한 상황인지, 아니면 딸기보다는 관리가 쉽고 가격이 맞아 그냥 사업적으로 내린 결정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묘하게 잘 어울렸다.

3. 앞으로의 과제: 입이 아프도록 말한 것처럼 오래된 한식당에서 제대로 된 디저트를 먹어보고 싶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목표인지 이제는 모른다. 물론 우래옥의 “바”에서 아이스크림(과 커피)도 파는 걸 보면 디저트의 의미를 모른다고 생각할 수 없지만 실행에 옮길 거라 생각은 안 들고, 다른 오래된 식당들은 아예 디저트 자체가 각자 내는 음식 세계 안에 편입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가능성이 없다면, 이런 수준은 좀 가능하지 않을까…? 오렌지를 입에 넣기 전 쳐다보다가 쪽(segment)의 흔적이 남아 있는 조각을 보고 생각했다. 칼집을 넣기는 했지만 여전히 껍질을 손에 쥐고 입에 과육 전체를 넣은 다음 이로 분리한 다음 다시 꺼내야 한다. 과연 이런 절차가 1인 최소 5만원의 식사의 격과 맞는 걸까. 아마도 ‘그럼 오렌지를 미리 썰어 놓지 못하는데다가 1쪽이 작아서 어렵다’는 답을 들을 가능성이 높지만.

‘오렌지를 반드시 이렇게 썰어 내야 한다’기보다, 과일 하나에도 더 잘 어울리는 손질 방법 또는 양식이나 문법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그건 받아들일 사람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올림픽 두 번째 하는 나라라면 좀 더 높은 수준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자질구레한 것들에 신경쓰지 않으면 크고 거창하고 심오한 것들은 발전하기 어렵다. 한식의 우수성 타령이나 미식 타령 같은 거창한 것들 백날 이야기해봐야 한국 대표 한식당에 그것도 고기를 시켜야 오렌지 한 쪽이 후식으로 나오는 상황이 눈에 안 들어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3 Comments

  • 뽐므 says:

    양도 많지 않고요. 사과한쪽 배한쪽 말고 집에서 식구들이랑 먹을 때처럼 한사발 가득 내주면 좋을텐데요.

  • Goldendonkey says:

    명품은 디테일이 결정한다고 하는데 가격대에 비해 세심함이 부족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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