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1)-한국은 계란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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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게 너무나도 지겹다. 그런지 좀 됐다. 밖에서 먹기나 집에서 먹기나 마찬가지다. 안 먹고 살고 싶다. 그래서 어디까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지 스스로를 대상으로 시험해 본다. 요즘의 점심은 대체로 오믈렛이다. 정해진 과업시간이 끝나기 15분 전-이유에 대해서는 뒤에서 차차 설명하겠다-에 계란 세 개를 그릇에 까고 소금을 약간 친 뒤 포크로 가볍게 휘젓는다. 그리고 일을 마저 한 뒤 팬을 달군다.

그렇게 계란을 깔 때마다 첫 시도가 떠오른다. 계란을 처음으로 깬 시도 말이다. 아홉살이었다. 언제나처럼 어머니는 일하시니 안 계셨고 나는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기억이 약간 희미하지만 토요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이상한 경우였다.  평일엔 언제나 밥이 식탁에 차려져 있었으니 라면을 끓여 먹을 일이 없었다. 아니, 끓여 먹으면 안됐다. 인스턴트, 과자, 탄산음료, 외제 등은 금지 식품이었다. 라면도 느슨하게 포함되었다. 다만 토요일 점심만은 예외였다. 오전 수업만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라면을 끓였다. 그런데 계란을 처음 까려고 시도했던 그 날은 토요일이 분명히 아니었다. 공기가 들떠 있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가스레인지에서 라면이 끓고 있었다. 이번엔 계란을 넣어보고 싶었다. 냉장고 문의 수납 공간에서 하나를 꺼냈다. 아홉살은 처음으로 혼자 불을 피우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다. 아직도 가스와 불을 향한 두려움이 전혀 가시지 않았었다는 의미다. 싱크대 바닥에 대고 계란을 깨어 라면에 그대로 풍덩. 그 이후 과장을 보태 백만 번쯤 해봤을 일이다.

그러나 첫 시도는 쉽지 않았다. 바닥에 몇 번을 내리쳐도 손을 넣을 만큼 틈새를 확보할 수 없었다. 속껍질이 질겼던 걸까? 몇 번 더 내리치자 껍데기가 완전히 박살나 버렸고, 계란이 흘러나와 그대로 싱크대로 미끄러졌다. 그렇게 나의 첫 계란은 수채구멍으로 꾸물꾸물 사라져 버렸다. 당시만 해도 계란이 분명히 귀했다. 한참 접어주더라도 그냥 내키는 대로 먹을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겨울 밤 깨진 계란을 싸게 사왔다며 형편이 어려운, 부모 없는 형제들이 기뻐하는 장면이 담긴 동화책을 훈훈한 마음으로 읽던 시기였다. 그래, 계란 많이 먹어. 콜레스테롤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속설도 한 몫 거들었다. 하지만 노란 노른자가 빤히 보더라도 차마 꺼낼 수는 없었다. 결국 계란을 깨는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나는 또 계란 없는 라면을 먹었다.

이후 마음에 새겼다. 계란은 어렵구나. 라면을 넘어 온갖 짠 음식(savory food)를 지나 계란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역할을 맡는 디저트까지 만들면서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점점 더 많이 다뤘지만 쉬워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언제나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를 소환할 수 있다. 욕쟁이 고든 램지의 스승 말이다. 미슐랭 별을 자진 반납하는 등 괴짜지만 계란에 대해서는 확고하다. 어려운 식재료라고. 그래서 계란 다루는 걸 보면 요리사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계란은 왜 어려운 재료인가. 일단 가장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수준에서만 살펴 보자. 일단 어떻게든 먹을 수 있다. 날 것은 물론이거니와 맥반석 사우나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있어 고무처럼 질긴 흰자를 씹는 사이 노른자가 부슬부슬 떨어지며 목구멍을 틀어 막을 지경으로 과조리해도 어떻게든 넘어는 간다. 달리 말해, 어떤 좌표에서 조리를 멈추더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기는 한다. 다만 그탓에 최적구간의 존재 가능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이론으로만 인식하고 실제로는 찾지 못한다.  부드러움, 절묘함, 세심함이 깃든 구간 말이다.

그래서 조류 독감으로 인한 계란값 상승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사실 나는 크게 영향받지 않았다.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 팔자가 아니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조금 여유 있을 정도로만 사다 놓으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코스트코 같은 곳에서는 판매량을 통제했으니 품절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너무나도 흔한 식재료인 반면 제대로 조리해서 먹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마저도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현실이 답답했다.

생각해 보면 단 한 가지의 예도 떠오르지 않는다. 계란의 최적 구간을 살려 내는 한식 조리법이 존재하는가? 당장 전통 조리법으로는 흰자와 노른자를 갈라 부치는 지단이 생각난다. 맛보다는 시각적인 요소, 즉 장식을 위한 조리법이고 완성된 상태는 필연적으로 과조리다. 단백질, 지방 및 레시틴으로 서로를 완충해주는 흰자와 노른자를 갈라 놓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렇다고 머랭과 커스터드(혹은 둘을 결합시킨 디저트 떠 있는 섬 île flottante)처럼 각자의 물성을 이해해 최대한 반영하지도 않는다.

한국식 수란은 어떤가? 국자 공기에 참기름을 바르고 계란을 깨 올린 뒤 끓는 물 위에 올려 익힌다. 온도만 적절히 맞추고 계란만 멀쩡하다면 흰자가 자연스레 노른자를 감싸 보호막을 만들고 전체를 부드럽게 익힐 수 있다. 하지만 물은 팔팔 끓고 계란은 국자라는 틀에 담긴 채 흰자, 노른자 할 것 없이 뻣뻣하게 굳어 간다. 설사 조리가 기적같이 적절히 되더라도 눈치 없는 참기름향은 어쩔 것인가.

일상의 차원으로 내려가면 계란의 조리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계란, 즉 생명의 상징이 학살 당한다고 믿는다. 계란 지옥이다. 일단 가장 흔한 형식인 삶은 계란부터 심각하다. 냉면 등 각종 국수류에 올라가는 삶은 계란은 음식 자체와의 어울림을 따져보기 이전에 완전히 과조리 되어 먹기가 어렵다. 전통적으로 같은 뻑뻑함을 지켜왔던 홍익회의 삶은 계란은 이제 맥반석 구운 계란으로 대체되면서 한층 더 열악해졌다. 술집의 (서비스) 안주인 계란찜이나 말이는 어떤가. 뻑뻑하거나 무겁다.

그나마 2014년 일본식 삶은 계란-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노른자에 간이 된-인 감동란이 출현해 상표명처럼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주었으나, 그마저 사실은 일본계 회사의 한국 진출이었고 질이 떨어졌으며 더 열악한 유사품이 등장하는데 흰자가 묽은 요즘 한국 계란의 특성 때문에 노른자 주위의 질감이 불쾌할 확률이 높다. 간짜장의 가치를 올려주던 튀긴 계란(믿거나 말거나 프랑스 요리책에도 등장한다)은 거의 사라졌다. 그나마 한국 음식의 맥락 안에서 나름 계란다운 계란이 가능해지는 조리법이었다. 노른자는 따뜻하지만 굳지 않아 부드럽게 흘러 나오고, 흰자의 가장자리는 부풀어 올라 바삭하고 고소하다. 이젠 전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문처럼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계란의 지평이 지옥 수준인데 우리는 아직도 엉뚱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흰 계란과 갈색 계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작금의 상황에서 과연 그걸 따질 이유가 있을까?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라는 ‘흑묘백묘론’이 있다. 계란 껍질의 색깔과 영양소의 우열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X라는 성분이 Y색 계란에 더 많이 들었다고? 설사 그렇더라도 그 미세함이 계란을 몇 개쯤 먹었을 때 영향을 미칠까? 알 수 없다.

또한 중국집에선 ‘부먹 찍먹 놓고 싸울때 탕수육 한 번이라도 더 먹어라’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게다가 한국의 계란은 맛도 별로 없다. 따라서 쓸데 없는 이야기하지 말고 일단 계란에게 과조리와 오남용을 사과한 뒤 잘 먹는 법을 파고도 모자를 시점에서 사람들은 그야말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나 하고 앉았고 계란값은 오른다.

그래서 정리를 좀 해볼 계획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고 계란마저 도와주지 않지만, 정녕 계란이라도 제대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다면 삶은 손톱 만큼이나마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그리 쉽지 않다. 조리는 많은 경우 습관이고, 흔한 식재료를 위한 것일 수록 바꾸기가 어렵다. 계란이 대표적인 예다. 그냥 물에 넣고 어떻게든 삶거나, 팬에 올려 어떻게든 부쳐 먹었다. 사소한 변화를 의식적으로 좇기 어려울 수 있다.

일단 보관 장소부터 바꾸고 시작한다. 문간의 플라스틱 틀과 작별을 고하고 포장 그대로 냉장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 둔다. 냉장보관이 반드시 필요한가? 대세인 세척계란이라면 그렇다. 닭이 낳았을때 계란은 큐티클층의 보호막을 입고 있다. 이 상태라면 상온 보관도 가능하지만 유통되는 계란의 대부분은 세척을 거친다. 깨끗함을 대가로 연약함을 얻으니 변질에 더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 따라서 냉장고가 길이다. 상온에서 하루는 냉장고의 일주일 일 수 있고, 계란의 유통 기한은 최대 7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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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mments

  • ichbinyul says:

    아.. 냉면에 계란은.. 전 아직 이해할수 없는 조합이예요..

    • bluexmas says:

      ‘모든 음식에 계란 올리기’라는 마법 주문이 존재는 합니다만 냉면과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 K.DH says:

    계란을 먼저 먹음으로써 냉면의 면에 있는 독성으로부터 위를 보호해줍니다

    • 종이사진 says:

      무짠지가 독성을 중화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달걀이 위를 보호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 RainyDays says:

    요즘은 일본 라멘집에서조차 냉장해놓은 계란 나오는 꼴을 봐야 하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 bluexmas says:

      계란 맛있는 일본 라멘집 드물지 않나요. 물론 한국 계란 자체의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만.

      • RainyDays says:

        계란 자체의 맛 따지기 한참 이전에… 일본 라멘 위에 반숙 계란이 아니라는 사실부터가 너무 절망적이어서요. 계란 이야기 나올 때마다 지적하시는 바로 그런 ‘딱딱하게 굳은 노른자 주변은 색이 변한 상태의 차가운 삶은 계란’을 접하면…… 라면 국물 안에 들어 있는데도 차가운 이 계란의 맛은 정말…… (눈물)

  • Cho says:

    계란 ‘과조리’도 문제지만 내용 없는 ‘과문장’됴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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