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킹구르 올라프손-필립 글라스 피아노 웍스

사실은 좀 더 들은 뒤 글을 쓰는 게 맞다. 음반을 계속 듣게 되면 연주자, 작곡자 등등에 대한 정보를 뒤져 읽는데 아직 그런 단계까지 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너무 좋은 건 또 그 가장 좋을 때의 기분을 기록해 두고 싶기도 하다. 비킹구르 올라프손(Víkingur Ólafsson)의 ‘필립 글라스 피아노 웍스’가 그렇다. 뭘 아냐면 그렇진 않다. 솔직히 필립 글라스도 잘 모르고 그의 음악도 거의 찾아듣지 않는다. 다만 에튀드 포함 몇 장의 앨범을 들었다. 동기는 좀 우스꽝스럽다. 잠이 잘 오지 않는, 새로울 것도 없는 여느 밤 소파에 누워 아이폰으로 이것저것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필립 글라스라는 사람의 음반 자켓을 발견했는데 그 얼굴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중년으로서 더 나이 먹었을 때 닮고 싶은 얼굴들이 있다. 그의 얼굴은 정확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여간 일종의 경외심 같은 것이 든다. 앨범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이었는데 다 좋았고, 가장 좋은 건 그가 아닌 나메카와 마키의 연주였다. 얼굴이 가장 좋았는데 연주도 하필 그랬다는 말이다.

그래서 필립 글라스의 연주나 곡은 언제 듣는가. 노동요로는 썩 자주 듣지 않는다. 평균율-굴다의 연주, 특히 2권-과 더불어 낮엔 굉장히 특정한 상황에서만 듣는다. 한마디로 꼽자면 심난한 때다. 이 연습곡에는 전반적으로 긴장감-단조와 리듬감-이 흐르는데, 그 긴장감이 자아내는 심난함으로 내 심난함을 덮어버리고자 할때 듣는다. 듣다 보면 곡과 연주의 심난함에 몰두해 내가 가지고 있는 심난함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써 놓고 보니 실로 웃기는 감상인데, 사실이다. 때로 곡들이 심난함을 자아내는지 궁극적으로는 편안함을 자아내는지 헛갈린다.

덕분에 노동요보다 사실은 수면 음악으로 더 좋다. 이런 느낌이라면 잠드는데 방해될 것 같은데 의외로 그렇지 않다. 특히 ‘Glass: Solo Piano’의 ‘메타모포시스’ 연작이 불면에 좋다. 다섯 곡이 연달아 나오는데 대개 세 곡 중간 쯤에서 잠들 수 있다. 에튀드보다 효과가 좋다.

그래봐야 몇 장 듣지도 않았지만, 올라푸손의 연주는 글라스 자신이나 마키의 연주보다 조금 덜 극적이다. 곡의 배열과 중간중간 등장하는 4중주 협연과 더불어 클래식 음악을 좀 더 잘 안다면 ‘유기적이군’이라 말하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이 모든 감상이 듣기도 전 자켓이 안기는 편견일 수는 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아련하지도 않은 연주자의 얼굴이 오른쪽 귀를 중심으로 반사-마치 프리즘을 거친 듯-되어 데칼코마니처럼 담겨 있다. 곡 이전에 소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빛의 표정이 담긴 소리 말이다(손가락에 대한 비유는 피아노에 너무 뻔하므로 피하자. 뭐 ‘빛의 표정’도 그다지 참신한 느낌은 아니지만…).

유튜브에 올라온 홍보 영상도 한 몫 거든다. 레이캬비크에서 일주일 가량 머무르면서 위스키나 마시고 자느라 지나치기만 했던 하르파 콘서트홀이 배경이다. 음반사의 소개에 의하면 녹음 자체를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굳이 의심할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연주 영상을 보고 음반으로 되돌아 오면 안 그랬대도 그랬다고 믿고 싶어진다. 내가 기억하는 아이슬란드-라기보다 레이캬비크와 약간의 이사피요루드-의 빛은 낮은 하늘에 한 숨 잦아든 (muffled?) 채로 깃들어 있었다. 미약함과는 좀 다른 느낌인데, 얽으려 하지 않아도 듣다 보면 생각하게 된다. 아까 먹은 약이 이제서야 잠을 좀 몰고 온다. 틀어놓고 잠을 청해야 되겠다.

*사족: 굴다의 평균율, 특히 2권은 많이 흐리고 침침한, 그래서 낮에 해가 안 보이는 겨울 낮에 노동요로 아주 잘 어울린다. 1권은 아직 아무의 연주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어제 오늘 리흐테르를 들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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