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8분의 6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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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때문에 이번 주 내내 고생했지만, 오늘이야말로 낮에 좀 잠들고 싶었다. 거대한 번역 과업이 이제 30쪽 정도 밖에 안 남아서, 오늘과 내일 나눠 끝내고 대미를 장식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주말에 일한다는 게 그렇다. 괜찮을 것 같아서 시작하면 바로 지쳐 버린다. 그래서 일종의 완충용 낮잠이 필요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고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 “과업”이, 그것도 예정보다 한참 앞당겨 끝난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도 믿을 수 없기에 전체에 비하면 터럭 같은 나머지 이틀분은 좀 더 즐기면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제 열 몇 쪽 남았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늦게 저녁을 먹고 잠시 산책을 나섰다. 길에 눈이 그대로 들러 붙었는지 전혀 몰랐다. 낮에 그야말로 눈이 펄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잠시 어떤 날을 떠올렸다. 저 먼 옛날 수원 구 시가지-흔히 ‘남문’이라 부르던 보건약국(맞나?) 근처 골목-의 고려당에서 난로의 뜨거운 보리차를 마시며 고로케를 먹던 날이었다. 자주 떠오르는 기억도 아니다. 실제로 날씨가 오늘 같았는지, 아니면 그저 눈이 좀 많이 오는 이맘때의 계절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썩 유쾌하지는 않은 길을 걸으면서 사실은 그 기억 자체조차 확실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뒤섞인 두 개의 각각 다른 기억이었다. 하나는 장소만 빌어왔다. 고려당은 분명히 맞다. 하지만 피자를 먹었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1인용 피자에 케첩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짜 올린, 1987년 쯤에 들어 맞는 피자였다.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가 갑자기 시내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그것도 나만, 한낮에.

처음부터 피자를 먹을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먹어야 했는데 피자가 있어서 골랐을 것이다. 우리는 거의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아무 것도 드시지 않았다. 상황은 아직도 기억하지만, 행간에 무엇이 깔려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물어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기억에선 음식을 빌어왔다. 고로케와 뜨거운 보리차 말이다. 이 기억은 아마 1987년보다 더 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일요일이었고 구로와 인천 사이의 친척-누구인지, 어느 동네인지, 누구와 함께 갔는지 다 기억하지만 쓰지 않겠다-집에 찾아갔다. 가끔 일요일에 완행 전철을 타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리면서 신발이 벗겨지는, 아수라장 같은 여정이었다. 수원에서 구로까지 올라와 다시 인천쪽으로 내려가는 어쩌면 비효율적인 여정이기도 했다. 언덕 꼭대기 같은 곳의 고층 아파트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친척이 없었다. 그래서 단지 앞 상가 빵집에서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사이 고로케를 먹고 뜨거운 보리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결국 친척은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왜 가야만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두 기억이 따로 존재한다는 걸 이 노래를 듣다가 생각해냈다. 왠지 나는 이 노래가 8분의 6박자라고 생각했고 그와 별 상관도 없지만 서로 다른 장소와 음식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다시 집에 와서 들어보니 심지어 이 노래도 8분의 6박자가 아니었다. 16비트라 착각한 모양인데 아무래도 크게 상관은 없고 사실은 소중한 기억도 아니다. 1987년식 피자도 고로케도 뜨거운 보리차도 먹거나 마시고 싶지 않다. 그것은 피자가 아니었고 고로케는 기름이 배어 나왔으며 보리차는 너무 뜨거웠다. 눈과 8분의 6박자가 굳이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다. 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식 비디오가 있지만 그냥 자켓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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